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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연의 AI시대 한국문화 읽기》과거급제에서 수능까지 — AI시대, 한국 교육열의 미래를 묻다
  • 천수연 문화 전문 칼럼리스트
  • 등록 2025-11-10 10:33:41
  • 수정 2025-11-10 19: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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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응원 (사진: 전북여고 제공)

조선의 한양. 봄마다 과거(科擧)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의 행렬이 종로 거리를 메웠다. 

붓 한 자루에 인생을 걸고, ‘과거급제(科擧及第)’와 ‘장원급제(壯元及第)’ 네 글자에 집안의 명운을 걸었다. 글로써 신분을 바꿀 수 있었던 유일한 길, 그것이 바로 과거(科擧)였다.


 600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 장면은 낯설지 않다. 

새벽 어스름 속, 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의 발걸음은 여전히 그 시대의 선비와 닮아 있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시험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통과의례로 남아 있다.


 조선 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 (사진: 우리문화신문 제공)

1993년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修能)’은 지식 암기 중심의 학력고사에서 벗어나 ‘기초학습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시험의 형식이 달라져도, 시험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수능은 한 해 단 한 번의 기회이자, 여전히 ‘인생을 가르는 시험’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수능 전날이면 교통이 통제되고, 비행기 이륙이 잠시 멈춘다. 학교 앞에는 후배들이 모여 “수능 대박!”을 외치며 떡과 엿을 나눈다.



수능 응원 (사진: 전남교육청 제공)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열망과 정(情)이 교차하는 하나의 문화적 의례이자, 시대를 초월한 ‘통과의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열정의 뿌리는 여전히 조선 시대의 유교적 가치관에 닿아 있다. 과거(科擧) 제도는 ‘배움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다’는 능력주의의 원형이었다. 유교가 강조한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배움을 통해 자신을 닦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상이 조선의 학문 문화를 지탱했다.


이후 산업화와 전쟁을 거치며 한국은 ‘교육이 곧 생존’인 나라가 되었다. 6·25전쟁 이후 물적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 지식만이 희망이었다. 그 결과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부모 세대에게는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인생’이라는 믿음이 견고하게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능 시험 수험장 모습 (사진: 매일경제 제공)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 전환의 시기에 서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학습과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 ‘시험’의 의미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ChatGPT와 AI 튜터가 수능형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별 학습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시대에 ‘공부한다’는 행위는 더 이상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암기력과 계산력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지만, 사유와 판단, 감정과 윤리는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경쟁’의 논리 속에서 움직인다.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가르는 구조, 등급과 순위로 학습의 가치를 정의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새로운 시대의 배움 역시 옛 관성에 갇힐 위험이 있다.

AI 시대의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훈련이 아니라,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사고의 힘을 길러야 한다. 

이제는 지식의 양보다 사유의 깊이, 경쟁의 속도보다 공존의 방향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던 조선 시대의 과거급제는 이제 AI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AI 시대의 ‘합격자’는 더 이상 시험을 잘 푸는 사람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지식을 인간의 의미로 되돌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물어야 한다.

AI가 학습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입시’와 ‘경쟁’의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험의 형식이 바뀌듯
 배움의 의미도 새롭게 바뀔 수 있을까.




글: 천수연(서울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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