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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60→61세, 무엇이 바뀌나…고령 정규직 5만여 명 ‘1년 더’, 임금·고용·연금이 동시에 흔들린다
  • 우경호 커리어 전문기자
  • 등록 2025-11-10 10:19:59
  • 수정 2025-11-10 1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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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 유예, 왜 지금 다시 논의되는가
  • 59→60세 절벽…‘퇴장 곡선’의 실체
  • 기업은 1년 더, 청년은 1년 덜


정년 유예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행 법정 정년 60세를 전제로 1년을 늦출 경우, 기업 현장과 가계, 연금 재정에 어떤 파장이 이어질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사용자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한 이후, 정년을 둘러싼 정책·노사 현안은 임금피크제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논쟁을 낳아왔다. 최근 정치권이 정년 상향을 공론화하면서 시장의 계산기는 다시 분주해졌다.


‘정규직 퇴장’의 절벽은 실제로 존재한다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를 활용한 최근 분석은 한국의 상용근로자 곡선이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뚜렷한 절벽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1960~1964년생 표본에서 59→60세 전환 시 상용근로자가 평균 5만6천 명 감소했고, 대기업 상용직만 놓고 보면 감소율이 40%를 넘겼다. 정년이 1년 늘어날 경우 이 ‘감소 구간’이 60→61세로 한 칸 이동하며, 기업은 고령 정규직 최대 5만여 명을 1년 더 고용하는 셈이 된다. 이는 인건비와 신규채용 여력, 직무 재배치 계획에 즉각적인 재정·운영 압력으로 작용한다.


임금피크제의 그림자와 법원의 가이드라인

정년 연장 혹은 유예가 임금피크제와 결합될 때의 법적·사회적 긴장도 무시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2022년 판결에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도입 목적의 타당성과 불이익 정도, 대체 보상, 절차의 공정성 등을 종합 고려하도록 했다. 정년 1년 유예가 ‘임금 삭감의 1년 연장’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연령차별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도의 취지가 세대 간 일자리 나눔이었는지, 기업의 비용 절감이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년 유예는 노사 간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청년 고용 잠식 논쟁, 데이터로 끝낼 수 있을까

정년 1년 유예가 청년 채용을 얼마나 잠식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내외 연구가 의견을 달리한다. 다만 한국의 고령층 노동참여는 이미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추가 1년’의 효과는 체감될 가능성이 크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와 참여율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올라 2025년 중반 60세 이상 노동참여율이 50%에 근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청년고용과의 직접적 상충관계는 업종·직무 특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기업 정규직의 정년 유예는 분명 신규채용 속도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결국 변수는 임금체계와 직무 기반 인사로의 전환 속도다.


기업 재무에 미치는 직접 비용과 간접 효과

기업 입장에서 정년 유예의 1차 충격은 인건비다. 특히 연공급 요소가 강한 임금구조에서는 정년 직전 구간의 평균임금이 높아 비용 압력이 크다. 반대로 직무·성과급 중심 체계가 자리 잡은 조직은 고경력자의 생산성이 임금과 더 밀접하게 연동되어 충격이 완화된다. 인력 운용 측면에서는 재교육과 직무 재설계가 핵심 과제가 된다. 기술 변화가 빠른 직무군에서 60대 초반 인력의 성과를 유지하려면 디지털 재훈련과 건강관리 프로그램, 단계적 시간제 전환 같은 ‘부드러운 감속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1년의 고용 연장이 곧바로 ‘1년의 비효율’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가계·연금 재정에는 ‘숨 고르기’의 시간

정년 유예는 개인에게 1년의 추가 소득과 보험료 납부기간을 제공한다. 국민연금 재정에도 단기적으로는 기금 유입이 늘고 급여 개시가 지연되는 긍정 효과가 가능하다. 한국은 기금 고갈 시점 연기에 초점을 맞춘 연금 개편을 이미 통과시켰고,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으로 지속가능성을 일부 개선했다. 다만 인구구조의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 추가적 제도개편과 노동시장 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년 유예만으로는 노후소득보장과 재정 안정의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 OECD와 연구기관의 일관된 지적이다.



초고령 사회의 큰 그림 속에서 본 ‘1년’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OECD 최고 수준이다. 중장기적으로 노년부양비는 2060년대 100에 근접하며, 생산가능인구 1명이 65세 이상 1명을 떠받치는 ‘1:1 구조’에 접근한다는 전망까지 제시된다. 이 궤적에서 정년 1년 유예는 거대한 조류 속 미세조정에 가깝다. 그 자체로 해법이 되기보다, 임금체계 개편과 평생학습, 고령친화적 일자리 설계, 직무 전환 인프라와 결합될 때 의미가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에는 비용, 청년에게는 기회비용, 고령층에게는 저임금 장기화를 남길 수 있다.


무엇을 점검해야 ‘질 좋은 1년’이 되나

정년 유예가 ‘양질의 1년’으로 기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연공 중심 임금에서 직무·성과 중심 보상으로의 이행 로드맵이 명확해야 한다. 둘째, 고령 근로자 대상의 재배치·재훈련 프로그램이 사전에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청년 채용과의 상충을 완화하기 위한 별도의 고용 인센티브나 채용쿼터 등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임금피크제는 법원의 기준에 맞추어 차별 논란을 최소화하고, 임금 삭감의 ‘대가’를 실질적 교육·복지·유연근무로 환원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금과 고용정책의 정합성을 높여 기여·급여의 타이밍을 조정하는 ‘연금-노동 연계 설계’가 요구된다. 정책의 성패는 1년이라는 숫자보다 제도를 둘러싼 설계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숫자는 작지만 파장은 크다

정년 1년 유예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날짜 조정이지만, 실상은 한국 노동시장과 연금, 세대 간 균형을 동시에 건드리는 구조 개편의 신호탄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인력운영의 방정식을 다시 풀어야 하고, 가계는 소득·노후계획의 타이밍을 재설정해야 하며, 국가는 연금과 고용정책의 맞물림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고령화의 파고가 거세지는 지금, ‘1년’의 의미는 설계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오래 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게 일하게 만드는가. 그 질문에 답할 때, 정년 유예는 논란을 넘어 해법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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