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2028년 10월,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기 위해 복구와 증축 공사가 본격화된다. 지난 2월 발생한 화재로 3층과 4층 일부가 크게 훼손되며 일정은 늦춰졌지만, 소중한 한글 유물들은 다행히 안전하게 지켜졌다. 박물관은 이 시간을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한글 문화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원래 2024년 말부터 교육공간 확충을 위한 증축 공사에 들어가면서 임시 휴관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옥상 용접 작업 중 불이 나면서 건물 일부가 불길에 휩싸였다. 특히 어린이 체험 공간인 ‘한글놀이터’와 사무공간이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유물들은 이미 다른 기관으로 옮겨져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한글 유물 9만여 점을 안전하게 보관하며 공백을 메우고 있다. 문화재의 안전을 확보했다는 점만으로도 불행 속에서 다행을 찾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화재 이후 전문가들의 정밀 진단은 건물 구조 보강이 필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 수리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박물관은 복구와 증축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총 175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며, 2026년 7월 공사를 시작해 2028년 10월 완전한 재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공사에서는 단순히 손상 부위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육 공간을 넓히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한글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새롭게 확충한다. 관람객의 편의와 안전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한 학습 공간으로 변모시키려는 계획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비록 건물 문을 닫았지만,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와 교육, 연구 기능은 오히려 더 넓은 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2025년에는 지역 순회전시 7회와 기획전 2회가 예정돼 있다. 오는 11월에는 문화역서울284에서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 전시가 열려, 한글과 필기 도구가 지닌 오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또 2026년은 특별한 해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주년, 시각장애인용 점자 ‘훈맹정음’ 100주년이 맞물린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등에서 차례로 선보인다.
교육 프로그램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한다. 온라인 강좌는 문화역서울284 스튜디오에서 제작되고, 어린이와 외국인 대상 교육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은 ‘모두미술공간’에서 이어진다.
어린이 체험 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던 ‘한글놀이터’는 세종시에서 새롭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2025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며, 이후 매년 권역별로 한 곳씩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을 넘어 전국 곳곳에서 아이들이 한글을 놀이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한글의 생활문화적 가치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박물관은 연구와 출판도 멈추지 않는다. ‘한글문화지식 100’, 영문판 ‘쉬운 한글’ 등 6종의 도서 발간이 예정돼 있으며, 순천청소년수련관에서는 ‘찾아가는 사투리 이야기 콘서트’가 열린다. 오는 10월 한글날에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강정원 관장은 “국민들께 불편을 끼쳐 송구하다”면서도 “휴관 중에도 한글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재개관 후에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국립한글박물관의 장기 휴관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박물관은 단순히 멈추는 대신, ‘움직이는 박물관’ 전략으로 국민 곁에 남아 있다. 이는 한글 문화가 특정 건물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6년 맞이할 한글의 세 가지 기념일은, 재개관 전에도 박물관의 존재감을 드러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한글놀이터’의 전국 확산은 어린 세대가 놀이로 한글을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문화를 이어가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재개관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한글 문화를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화재라는 아픔 속에서도,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이 가진 힘을 다시 확인하고, 2028년 가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