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지난 7월 말과 8월 말 두 차례에 걸쳐 특검 요청을 받아 문제의 작품 ‘점으로부터 NO.800298’을 감정했다. 협회는 ▲비정상적 가격 변동 ▲서명과 재료, 화풍의 차이 등을 근거로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이 작품은 2022년 대만의 군소 옥션에 출품될 당시 시작 추정가가 한화로 220만~450만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낙찰가는 약 3천만 원에 달했다. 이후 한국으로 유입된 뒤 불과 1년 만에 인사동 화랑가에서 1억 원을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협회는 “급격한 가격 상승과 서명 불일치 등은 위작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같은 작품에 대해 “진품”이라는 소견을 제시했다. 센터는 “헐값 경매 출품 사례라 하더라도 진품이 저평가돼 거래되는 경우가 있으며, 화풍 역시 작가의 후기 변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주요 감정 기관의 결과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작품의 진위는 안갯속에 빠졌다.
이 작품이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는 점이 사안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특검은 해당 그림이 김상민 전 검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총선 공천 대가로 건넨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김건희 여사의 오빠 장모 주택에서 압수됐다. 특검은 작품의 유통 경로와 거래 과정, 감정 결과를 종합해 의혹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고 있다.
정치권 반응도 엇갈린다. 여당은 “아직 진위가 확정되지 않은 작품을 두고 정치적 공세를 펼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방어에 나선 반면, 야당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려면 철저한 수사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작품의 진위가 어느 쪽으로 결론 나든, 정치적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etherealauctioneers 홈페이지 캡쳐
이우환 화백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지만,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국내에서 대규모 위작 사건이 드러나면서 법원이 일부 작품을 위작으로 판정하고 관련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미술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작가 본인도 직접 법정에 서서 자신의 이름이 붙은 위작에 분노를 드러냈다. 이번 논란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전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미술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첫째, 감정 제도의 불안정성이다. 동일한 작품을 두고 감정 기관마다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시장 신뢰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미술품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고액이 오가는 자산이자 문화적 자산이다. 감정의 객관성과 전문성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시장 투명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둘째, 유통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대만 경매에서 저가에 거래된 작품이 불과 1년 만에 한국에서 수십 배 가격으로 뛴 과정은 정상적인 시장 흐름으로 보기 어렵다. 미술품이 단순 투자 수단을 넘어 돈세탁이나 뇌물성 자산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셋째, 정치와 예술의 위험한 결합이다. 한 점의 작품이 공천 대가 의혹과 얽히면서, 미술품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한 감정 문제를 넘어 한국 미술 시장 전체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우환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라 위작 시도가 잦았다. 이번 사건은 미술 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감정학계 인사는 “화학 분석, 제작 연대 검증, 작가 증언 등 다각적인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한 기관의 감정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앞으로 감정 결과뿐만 아니라 작품의 거래 경위, 가격 변동, 관련자 진술까지 종합해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법원이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위 판정을 넘어 이번 사건은 더 큰 질문을 남긴다. 예술은 권력과 맞닿을 때 어떻게 변질되는가, 미술품은 언제부터 정치적 거래의 매개가 되었는가, 그리고 한국 미술 시장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