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가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있다. 28일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인공지능(AI) 칩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될 AI6 칩을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센터 등에 공급하는 내용이다. 이 소식에 다음 날 삼성전자 주가는 장 초반 2% 하락했다가 오후 들어 0.3% 상승으로 마감했다.
업계 분석가들은 이번 계약이 삼성 파운드리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삼성은 높은 경쟁에 직면해 있다. 퀼터 체비엇의 벤 배링저 애널리스트는 “이번 계약이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메모리 사업 역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에서 엔비디아에 납품 지연을 겪으며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어 대형 고객 유치에 어려움이 있다.
계약 조건에 대한 기대도 있다. 영국 투자사 AJ벨의 러스 몰드는 “삼성이 장기 공급계약을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공급망 리스크와 관세 마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파운드리 가동률과 수율을 높여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매트 브리츠먼 연구원은 “실제 자동차에 칩이 적용되는 데 1~2년이 걸릴 것”이라며 단기 매출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계약 발표 하루 만에 워싱턴으로 출국한 것이다. 삼성은 이는 “비즈니스 출장”이라고만 밝히고 있지만, 언론은 이 회장이 한·미 관세협상 지원을 위해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거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어, 삼성의 사업 전략과 정부의 무역외교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이번 계약을 발판으로 미국 내 고객을 확대하려면 생산성 개선과 기술 리더십 확보가 필수라고 조언한다. 특히 EUV(극자외선) 공정에서 수율을 높이고, 차세대 GAAFET(게이트올어라운드) 구조를 안정화해야 TSMC에 맞설 수 있다. 또한 HBM 공급 차질을 조속히 해소해 엔비디아 및 AMD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AI 칩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만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메모리 양 부문에서 동시 성장 전략을 실현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