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한 무역협상 막바지, ‘조선업 카드’로 관세 압박 넘을까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산 자동차·철강·배터리 등에 최대 46%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한국 경제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았다. 이런 가운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워싱턴으로 향했다. 그는 스콧 베슨트 미국 재무장관과 회담에서 한국이 준비한 ‘중장기 협력 프로그램’을 제안할 예정이며, 여기에는 조선업·에너지·기술 협력이 포함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조선업 협력이다. 한국이 2024년에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를 확장해 미국 해군과 민간선박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를 최신 설비로 업그레이드하고 LNG 및 친환경 선박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도 워싱턴을 방문해 협상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관세 철회가 아니라 미국 내 생산과 고용 증가”라며 “조선업 협력은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카드”라고 밝혔다.
또 다른 협상안은 반도체·배터리 공급망의 상호 보완이다. 한국은 미국 텍사스에 새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투자 확대를 언급하며, 미국 시장에서의 공급 안정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교역·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려 관세 우회를 달성하려는 계산이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는 자동차, 철강, 의약품 등 다양한 품목에 걸친 관세 적용을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로드맵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문에는 구 부총리뿐만 아니라 산업부 장관과 무역대표부가 총출동했다. 루트닉 미 상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스코틀랜드까지 날아와 만나자고 했을 정도로 딜에 절박하다”고 밝히며 협상 분위기를 전달했다. 외교부의 조현 외교부장관도 일본 도쿄를 거쳐 워싱턴을 방문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한편,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우려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은 공급망 재편을 통해 글로벌 교역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 내 추가 투자와 기술협력을 통해 관세 장벽을 우회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대체 시장을 확대해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을 병행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은 단기간 관세를 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으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향후 재차 관세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조선업 협력이 실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국 노조와의 협상, 환경규제 준수, 기술 이전 방식 등 세부적인 실행계획이 명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협상 결과와 관계없이 중장기적으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고, 수출 의존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