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N잡러 시대의 한국… 본업+부업+사이드잡, 이제는 생존 아닌 선택의 문제
  • 에릭 한 경제 전문기자
  • 등록 2025-07-27 13:54:28
기사수정

N잡하는 내용의 유튜브 채널 = 유튜브 캡쳐


N잡러 시대의 한국… 본업+부업+사이드잡, 이제는 생존 아닌 선택의 문제


“낮엔 직장인, 밤엔 라이브커머스 판매자, 주말엔 파트타임 코치.” 36세의 김주승 씨(가명)는 한 주에 세 가지 직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서울의 중견 IT기업에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는 패션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고, 주말엔 테니스장 코치로 일한다. 그는 말한다. “하나의 직업만으론 불안하고,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 게 오히려 재미있어요.”

2025년, 한국 사회에선 이른바 ‘N잡러’가 새로운 직업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생계유지를 위한 부업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자기실현과 수입다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선택이 되고 있다.


■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고용노동부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다중직업 보유자 수는 약 78만 명으로 전년 대비 19.4% 증가했다. 특히 20~30대의 비율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중직업자의 구성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본업+콘텐츠 크리에이터 △공무원+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회사원+디자이너 프리랜서 △주부+리뷰어 등 조합의 형태도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잘파세대다>의 저자 이시한 교수는 “MZ세대는 안정성보다 유연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N잡은 ‘투잡’ 개념을 넘어,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디지털 플랫폼이 촉진한 변화

N잡러 확산의 배경에는 디지털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도 한몫하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부업을 가능하게 했고, 스마트스토어와 쿠팡파트너스, 브런치 등의 플랫폼은 일반인도 쉽게 상품을 팔거나 글을 써서 수익을 낼 수 있게 했다.

또한 AI 툴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업무 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하면서, 남는 시간을 부업에 할애할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예를 들어, 직장인들이 퇴근 후 1~2시간만 투자해도 번역, 로고 디자인, 영상 편집 등의 재능마켓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시한 교수는 “N잡의 핵심은 시간 분할력과 동기부여”라며 “디지털 도구만 잘 활용하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한 운영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 긱 이코노미와의 결합… 노동 유연성 vs 안정성 논쟁도

N잡러는 긱(gig) 이코노미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긱워크는 단기 프로젝트나 프리랜스, 임시직 업무 중심으로 구성되며, 플랫폼 기업이 이를 중개한다. 실제로 배달앱 라이더, 대리운전, 설문조사 대행, AI 학습 데이터 가공 등의 일자리도 다중직업자의 주된 활동 분야로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긱 기반 다중직업은 ‘노동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있다. 사회보험 미적용, 근무 강도, 수입 불안정 등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보험 등 기존 법 체계가 단일직장 기준으로 구성돼 있어 법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디지털노동의 급증에 대비해 ‘N잡 친화형’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며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법적 지위와 노동권 보장 문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 N잡은 선택인가 생존인가?… 양극화의 새 얼굴

문제는 N잡러가 무조건 긍정적인 흐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수익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 N잡러’가 있는 반면, 본업의 수입 부족과 불안정한 고용환경 탓에 부업을 택한 ‘생존형 N잡러’도 적지 않다.

실제로 2024년 3분기 기준 20대 N잡러 중 37%는 “본업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고 답했으며, 40대 이상에서는 “노후 대비 수입 보전용”이라는 응답이 급증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42세 이은정 씨는 오전엔 초등학생 학원 차량 운전, 오후엔 키오스크 매장 관리, 주말엔 플리마켓 참여로 하루를 꽉 채운다. 그는 “한 직업으로는 생계가 안 되고, 보험도 제대로 안 들어준다”며 “나에게 N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이처럼 N잡러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노동자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안전망의 빈틈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 기업과 정부의 대응은?

최근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부업을 허용하거나 장려하기도 한다. 카카오, 네이버, 토스 등 IT 기업들은 “부업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요소”라며 사내 부업 제도를 도입하거나 신고만으로 가능하게 했다.

반면 전통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겸직 금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N잡 문화와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부 공무원은 “퇴근 후 블로그 수익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불합리한 규정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디지털 노동시장법’과 ‘N잡형 고용분류체계’ 개편을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향후에는 다중직업자도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보완할 계획”이라며 “2030년까지 디지털노동권 보장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1
홈플러스 부동산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