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대단지 아파트 지역인 잠실의 모습(네이버 거리뷰 캡처)
건폐율 60%에 작고 아기자기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아니라, 똑같이 생긴 아파트 20층 한 칸이 오히려 ‘더 비싸고 더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아이러니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
🏘️ 아파트에 대한 맹목적 집착, 그 기묘한 현실
대한민국의 주거 유형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64.6%.(출처: 2023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청)이다.
이는 전 세계 최고 수준. 하지만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주거의 선택 비율이 아니다. 이는 우리 경제의 기형적 구조와 한국인의 집단적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바로
“아파트를 갖지 못하면 계층상실자”라는 불안감,
“아이를 키우려면 학세권 아파트 커뮤니티에 살아야 한다”는 교육 프레임,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트는 유일하게 가격이 오르는 부동산”이라는 집단적 신념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 토지보다 시멘트, 철근과 유리창의 가치가 더 높은 사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경제적 성공과 중산층의 상징'으로 고정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나 정작 그 실체는 어떠한가?
그럼에도 한국의 아파트는 부동산 투자 상품 1호로서 미학적 품질과는 무관하게 황금송아지 우상과 같이 숭배되고 있다.
🌍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 ‘괴현상’
홍콩이나 싱가포르 역시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지만 그곳은 대다수가 정부가 소유한 공공주택이다.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 소유다.
민간 주도 공급과 민간 중심 소비가 맞물려 만들어진 자산 중심의 아파트다.
즉,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파트를 자산으로 사적 투기화한 나라라 할 수 있다.
🌍 주요 선진국들의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
외국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비정상회담>이라는 예능에서도 이러한 대한민국의 아파트 괴현상이 언급된 적이 있다. 바로 이들의 눈에는 한국에서는 아파트 소유가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 이상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아파트를 빈곤한 층이 사는 거주 유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JTBC 예능 <비정상회담> 화면 캡처
또 단독주택이 대부분의 거주 유형을 차지하는 북미에서도 “아파트에서 산다 =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 의 공식으로 통용된다. 돈이 없다면 모를까 굳이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공공주택(아파트)에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땅에 울타리 치고 사적 공간을 소유하는 단독주택이 훨씬 선호된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도 ‘아파트’(アパート)에 산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다만 고급형 아파트의 한 종류인 맨션(マンション)만은 중산층 이상의 이미지이기는 하다. 그래서 아파트라고 부르지 않고 맨션이라고 따로 지칭한다.
🏗️ 왜 우리는 이 미학적 저열함을 감수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주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땅의 가치는 크게 오르지 않아도,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아파트 가격은 급격히 오른다. 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 우리는 '주거'를 잃고, '상품'만 남겼다
이렇게 한국의 아파트는 집(house)이 아니라 상품(product)이 되었다.
삶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매매 가능한 가격표가 붙은 박스가 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좋은 아파트'란 삶의 질이 아닌 '가격이 더 오를 아파트'를 뜻한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그래서 이렇게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가지지 못한 가지각색의 작은 주택들과 좁지만 정감 넘치는 골목길을 찾아 익선동, 연남동, 성수동을 돌아다니며 콘크리트 네모 속에 사는 자신들을 위로해줄 어딘가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는 확실히 편리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확실히 편리함은 하나의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편리함만이 절대 기준이 될 때, 사회는 균질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아파트’만이 거의 유일한 주거 형태로 숭배되는 한국 사회는 이제 그 저열한 미학과 구조적 위험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