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1심과 2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2015년 합병 사건부터 시작된 약 10년간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났다.
이번 사건은 2020년 9월 이 회장 등 11명이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며 본격화되었다. 검찰은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부당 합병과 회계 조작에 관여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검찰의 주요 디지털 증거(18TB 서버 등 3704개)가 압수 절차 위법으로 배척되어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이사회에서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 비율(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은 이재용 회장(당시 제일모직 최대주주, 지분 23.2%)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부당 조치라는 의혹을 낳았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반대했고, 2017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해 2023년 6월 690억 원 배상을 판결받았다.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합병 과정에서 주가를 조작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 은폐 및 4조5000억 원 가치 과다 계상을 통해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9년 5월 공장 바닥과 직원 집에서 발견된 18TB 서버가 핵심 증거로 제시되었으나, 법원은 2022년 대법원 결정(2021모1586)에 따라 압수 절차 위법을 이유로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8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일부 회계 처리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번 사건 외에도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되었다.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측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2018년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2021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재구속되었으며, 2021년 8월 가석방, 2022년 8월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었다.
이러한 사법 리스크는 삼성의 경영에 제약을 초래했다. 2017년 하만 인수(약 9조 원)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중단되었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에서 경쟁력 약화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TSMC에 뒤처졌으며, 2022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애플(23%)에 내주고 2위(20%)로 밀려났다. 이는 사법 리스크뿐 아니라 기술 개발 지연, 글로벌 시장 변화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대법원의 무죄 확정으로 이 회장은 경영에 전념할 여건을 마련했다. 삼성은 반도체 초격차 회복, AI, 파운드리 사업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24년 6월 이 회장은 버라이즌 CEO 한스 베스트베리와 차세대 통신 기술 협력을 논의했으며, 2024년 2월 오픈AI CEO 샘 올트먼과 AI 투자 방안을 협의했다.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2025년 7월 17일 판결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1.39% 상승해 6만5600원을 기록했으며, 삼성생명(1.2% 상승), 삼성화재(0.8% 상승) 등 계열사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는 “사법 리스크 해소로 이 회장이 진취적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전망했다.
무죄 판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경제개혁연대는 2025년 7월 17일 성명을 통해 “판결이 자본시장 공정성을 해친다”며, 국민연금(2015년 합병 당시 1388억 원 손해 추정)에 손실을 초래한 합병 과정을 비판했다. X 플랫폼에서는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한겨레와 민변은 2019년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단(승계 작업 인정)과 이번 판결의 모순을 지적했다. 다만, 법원은 이재용 회장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 손실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은 과거 노조 와해(2018~2020년 유죄 확정), 비자금 조성(2007년 김용철 변호사 폭로) 등으로 비판받았다. 2020년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했으나, 정보 접근 한계와 권고안 강제력 부족으로 실효성 논란이 있다. 장영철 경희대 교수는 “윤리와 준법 경영 없이는 삼성의 도약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의 무죄 확정은 삼성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국민 신뢰 회복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명한 지배구조와 윤리 경영이 필수적이다. 이 회장이 강조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삼성을 어떻게 이끌지, 재계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