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철 첫 눈이 내리는 시기부터 정형외과와 응급실에는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이때 가장 취약한 부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관절이다. 고관절은 골반뼈와 대퇴골이 만나는 관절로,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며 체중을 견디는 중심 축이다.
평소에는 단단한 관절 구조와 주변 근육이 충격을 흡수하지만, 빙판길에서 옆으로 넘어지며 엉덩이 쪽으로 직접적인 하중이 실릴 경우 대퇴골 경부 골절 등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령층과 골다공증 환자, 하체 근력이 약한 중·장년층에서 위험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고관절 부상 예방의 최우선 원칙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꼽는다. 추상적인 조언처럼 들리지만,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수칙만 지켜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첫째, 신발 선택이 중요하다. 바닥이 단단하고 미끄러운 가죽 구두나 힐, 납작한 플랫슈즈는 겨울철 빙판길과 맞지 않는다. 밑창의 마찰력이 높은 운동화, 요철이 깊게 파인 워커형 신발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기존에 신는 신발을 유지해야 한다면, 신발 바닥에 부착하는 미끄럼 방지 패드나 착탈식 아이젠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둘째, 보행 습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빙판길에서는 보폭을 평소보다 줄이고, 발뒤꿈치부터 찍어 디디기보다 발바닥 전체를 동시에 바닥에 붙이듯 걷는 방식이 권장된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무게 중심을 발 앞쪽에 두면 갑작스러운 미끄러짐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계단과 내리막길에서는 반드시 난간을 잡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제설·제빙이 덜 된 이면도로와 건물 출입구 주변, 지하철역 계단 등은 눈과 얼음이 집중되는 구간이다. 한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기보다 양 어깨에 고르게 짐을 나누어 멜 수 있는 배낭형 가방을 사용하는 편이 균형 유지에 유리하다.
넷째, 평소 하체 근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쿼트, 옆으로 다리 들기, 제자리에서 한쪽 다리로 일정 시간 서 있기 등 간단한 근력·균형 운동을 꾸준히 시행하면, 넘어지는 상황에서 몸을 지탱할 힘을 높일 수 있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발달할수록 넘어졌을 때 충격을 관절 대신 근육이 먼저 흡수한다는 점도 예방 효과를 뒷받침한다.

겨울철 고관절 부상은 야외 빙판길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현관, 욕실, 베란다처럼 물기가 남기 쉬운 실내·반실내 공간은 노년층에게 또 다른 위험 요인이다.
현관 출입구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나 발수(撥水) 기능이 있는 매트를 설치하고, 욕실에는 안전 손잡이와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부착하는 것이 권장된다. 밤 시간대에는 복도·침실·화장실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발밑을 비추는 간접 조명을 설치해 시야 확보를 돕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빙판길에서 크게 넘어졌을 때 다리가 저릿하거나 엉덩이와 사타구니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도 “하루 이틀 쉬면 낫겠지”라며 버티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관절 골절은 방치할 경우 뼈가 어긋난 상태로 붙거나, 통증 때문에 보행이 악화돼 전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서 있거나 걷기가 어렵고, 체중을 싣는 순간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아 보이거나, 바깥쪽 또는 안쪽으로 비틀어진 듯한 변형이 관찰될 때
엉덩이 주변이 급격하게 붓고, 살짝 눌러도 극심한 통증이 유발될 때
이러한 증상은 대퇴골 경부 골절 등 고관절 골절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표적인 신호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수적이다.
프리픽
가족이나 주변인이 눈길에서 크게 넘어졌을 경우, 현장에서의 초기 대응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골절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강제로 일으킬 경우 골절 부위가 더 어긋나거나 주변 혈관·신경 손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단계는 넘어졌을 때의 자세를 유지한 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다리 아래와 양옆에 접은 옷가지나 담요를 받쳐 임시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통증 부위에는 얼음찜질을 통해 부기와 동반 통증을 완화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일 뿐 골절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노년층인 경우에는 구급차를 이용한 이송이 권장된다. 젊은층이라 하더라도 절뚝거리며 겨우 걷는 정도라면, 자가 진단에 기대기보다 신속히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편이 안전하다.
의료기관에서는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골절 여부와 위치, 변형 정도를 우선 확인한다. 엑스레이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에는 CT나 MRI 검사가 추가로 이뤄질 수 있다.
골절이 아닌 타박상이나 인대·근육 손상의 경우에는 일정 기간 안정을 취하면서 약물 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한다. 그러나 골절이 확인되면 연령과 전신 상태, 골절 형태에 따라 금속 나사·핀을 이용한 고정술이나 인공관절 치환술 등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에는 “조기 진단–조기 수술–조기 보행”이라는 원칙이 예후를 좌우한다. 수술 시기가 늦어져 누워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근육량 감소, 폐렴, 혈전증 등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겨울철 고관절 부상은 단순한 계절성 사고가 아니라, 특히 노년층에게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중대한 건강 문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곧 신발과 보행 습관, 실내 환경, 하체 근력 상태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미끄러짐 사고는 대부분 운이 나빠서 생긴다기보다, 제설이 미흡한 환경과 개인의 대비 부족이 겹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은 습관과 준비만으로도 고관절 골절 같은 큰 사고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