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재단, 3000억대 ‘매물’로… PF 부실이 불러온 사학 재편 파문

한양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양학원이 사실상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양학원은 외부 자본에 이사 선임 권한을 포함한 이사회 운영권을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그 대가로 약 3000억 원 수준의 자본 투입을 받는 조건을 타진하고 있다.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 자체를 사고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사 선임 구조를 바꾸면 실질적인 운영 주체를 바꿀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법인이 직접 거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재단이 통째로 매물로 나온 것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비즈 등은 한양학원이 보유한 부동산·호텔 등 수익용 자산 규모를 감안할 때,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재단 가치(밸류)를 7000억 원 안팎까지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재단 매물’ 이슈의 뿌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다. 한양학원 산하 건설사인 HYD한양(옛 한양산업개발)은 물류센터·상업시설 개발 PF 사업에 대규모 보증을 서왔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 사업 지연이 겹치면서 PF 자금 회수가 막히자, 계열사가 선 보증한 금액이 우발채무로 떠올랐고 이 리스크가 재단까지 전이됐다.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양산업개발이 제공한 보증 규모는 5000억 원을 넘는 수준으로, ‘한양산업개발 → 백남관광 → 대한출판 → 학교법인 한양학원’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 안에서 재단 재무 리스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양대병원은 전공의 파업 여파와 적자 구조로 여러 해 재정난을 겪어 왔고, 등록금 동결로 추가 재원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PF 부실, 병원 재정난, 등록금 동결이 겹치면서 한양학원 재무는 “수 년간 누적된 구조적 위기”로 평가돼 왔다.

재단의 유동성 위기는 이미 여러 차례 자산 매각으로 겉으로 드러났다. 한양학원은 올해 6월, 68년 역사의 계열 금융사 한양증권 지분 29.6%를 사모펀드 KCGI에 약 2200억 원에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꾸준한 이익을 내온 알짜 캐시카우를 판 결정 자체가 재단 재무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PF 부실 해소를 위해 재단은 한양증권뿐 아니라 서울 중구의 4성급 호텔인 프레지던트호텔 매각도 추진해 왔다. 보도에 따르면 HYD한양의 PF 우발채무가 4000억 원을 넘어서자, 한양학원 그룹은 한양증권 매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호텔 등 부동산 자산 처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한양증권 매각을 둘러싸고는 ‘파킹딜’(경영권을 잠시 넘겼다가 되찾는 거래) 의혹, 재단 이사장 일가와 투자자 간 특수관계 논란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알짜 계열사와 수익형 자산을 줄줄이 내다 판 뒤에도 PF 부담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결국 재단은 “운영권 자체를 외부에 넘기는” 결단을 택한 셈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 자체의 매매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 대신 이사 선임 구조를 바꾸거나 이사 선임권을 특정 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운영권을 이전하는 길만 열어둔다.
이번 한양학원 사례 역시 바로 그 구조를 활용하는 전형적인 ‘운영권 거래’ 모델이다. 투자자는 약 3000억 원을 넣고 이사 선임권을 확보하는 대신, 한양학원을 통해 한양대·한양대병원·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문제는 공공성을 지녀야 할 교육기관의 지배 구조가 사실상 사모 자본이나 대기업 투자 논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단이 보유한 수익용 자산은 등록금 동결 속에서 교육·연구 환경 개선, 장학금 확대, 교원 확충을 떠받쳐 온 재정 기반이다. 유스라인은 “수익용 지배구조 기업이 매각되면 학교 발전을 견인할 동력이 약화되고, 교원 임용·연구비·실험실습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법적으로는 ‘학교는 안 팔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육 사업의 방향을 좌우하는 핸들이 외부 자본에게 넘어가는 구조다. 이 지점을 두고 “사립학교법의 취지를 우회한 편법 매각 아니냐”는 비판과 “어려운 재단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가 충돌하고 있다.

당장 내년 입시나 재학생들의 학사 운영이 급격히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단 매각·운영권 이전은 통상 수개월 이상 협상과 인허가 과정을 거치는 장기전이며, 교육부 역시 기본재산 변경이나 지배 구조 변화가 학교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몇 가지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 재정 운용 기조 변화
새 운영 주체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영역은 재무 구조다. 적자 사업 정리, 수익성 낮은 캠퍼스·사업 정비, 장기 투자 계획 재조정 등이 뒤따를 수 있다.
2) 의료원·공대 중심 투자 재편
한양대는 의대·대학병원, 공대·IT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대학이다. PF 부실의 진원지가 물류·부동산 투자였던 만큼, 새로운 투자자는 “핵심 경쟁력만 남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3) 교육 공공성·학문 다양성 논쟁
재단이 재무 위기를 벗어나더라도, 수익성 중심의 지배 구조 아래에서 인문사회·기초학문에 대한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이미 다른 사립대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반복돼 왔다.
한양대는 서울 상위권 사립대 가운데서도 공대·의대·의료원 경쟁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재정이 탄탄한 학교로 인식돼 왔다. 그런 한양대 재단마저 PF 부실과 계열사 리스크에 흔들리면서, 국내 사학 재정 구조의 취약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등록금 동결 장기화, 병원과 부동산에 의존한 수익 구조, 내부 지배구조와 가족 경영, 그리고 PF 위기라는 변수까지 겹친 구조 속에서, 이번 한양학원 매각 시도는 다른 사립대 재단들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다. 누가 새 운영 주체가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부와 사회가 어떤 ‘공공성 가이드라인’을 요구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