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쿠팡은 한국 소비자에게는 토종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법적 본사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등록돼 있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Coupang, Inc.가 모회사다. 실제 본사 주소도 미국 시애틀에 있다. 한국에서 전체 매출 대부분을 올리고 수만 명의 한국인 직원을 고용하지만, 법적으로는 미국 기업이다.
치맥의 상징 ‘카스’를 만드는 오비맥주는 2014년 벨기에의 맥주 공룡 AB 인베브가 다시 인수했다. 이후 오비맥주는 AB 인베브의 100% 자회사로 편입됐다.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한국에서 소비되지만, 최대 이익 귀속지는 벨기에 본사다. 한국 브랜드처럼 인식되지만, 지배구조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 법인이다.
배달앱의 대명사 ‘배민’은 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가 인수를 발표했고, 2021년 3월 2일 거래가 최종 종결됐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본사의 지배를 받으며, 한국에서만 서비스되는 로컬 플랫폼으로 운영된다. 사용자에게는 여전히 ‘한국 앱’이지만, 지배구조상은 독일 기업 산하다.
국내 3대 타이어사 중 하나였던 금호타이어는 2018년 중국 더블스타(靑島雙星)가 지분 45%를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한국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대주주로 남았지만, 경영권은 더블스타가 행사한다. 2024년에도 더블스타의 지배력 강화를 다룬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며 국내외 시장에 공급하지만, 지배주주는 중국 기업이다.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찾는 잡코리아는 2021년 아시아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100% 인수했다. 이후 호주 취업 플랫폼 SEEK가 10% 지분 투자를 하며 현재는 어피니티 90%·SEEK 10% 구도가 됐다. 서비스와 직원은 한국에 있지만, 소유권은 외국 자본에 있다.
국내 유아복 대표 브랜드 아가방은 2014~2015년 중국 Lancy Group이 지분을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다.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매장과 브랜드는 한국에 남아 있지만, 최대 의사결정권은 중국 기업에 있다.
가스레인지와 보일러로 유명한 린나이는 사실상 일본 린나이 본사의 자회사다. 일본 린나이의 연결 재무제표에 한국 법인 Rinnai Korea가 주요 자회사로 포함돼 있으며, 시장조사 보고서에는 97% 이상 지분 보유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한국 법인이지만 소유권은 일본 본사에 귀속된다.
지식 공유 사이트 나무위키는 많은 사람이 한국 기업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실제 운영 법인은 umanle S.R.L.로, 파라과이 아순시온에 등록돼 있다. 서비스는 철저히 한국어 기반이지만, 법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아니다. 규제와 법적 책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 점이 다시 부각된다.
생리대 ‘좋은느낌’, 기저귀 ‘하기스’, 휴지 ‘크리넥스’로 알려진 유한킴벌리는 1970년 설립된 합작사다. 지분 구조는 미국 Kimberly-Clark 70%, 한국 유한양행 30%로, 다수 지분은 미국 본사에 있다. 한국에서 생산·고용 기여도가 높지만, 법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합작기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9개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브랜드의 로컬성과 지배구조의 국적이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한국에서 쓰이니 자연스럽게 한국 기업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법적 국적은 본사 소재지와 지배주주에 의해 결정된다.
쿠팡·배민처럼 한국에서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도, 본사와 지배주주는 미국·독일에 있다.
카스·린나이·유한킴벌리처럼 생산과 영업은 한국에서 하지만, 소유권은 벨기에·일본·미국 본사에 있다.
금호타이어·아가방·잡코리아처럼 한때 한국 기업이었으나 중국·호주·홍콩계 자본이 지배하는 사례도 있다.
나무위키처럼 아예 운영 법인 자체가 해외인 경우도 존재한다.
이처럼 ‘한국의 얼굴을 한 외국 기업’은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 이동과 기업 소유 구조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카스를 마시고, 배민으로 음식을 주문하며, 쿠팡에서 장을 본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외국 본사와 글로벌 자본의 지배가 존재한다. 국적 논란은 단순히 정체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 소유 구조는 이익의 귀속, 경영 의사결정, 나아가 국가 경제와 고용에까지 영향을 준다. 한국 브랜드라 생각했던 기업들의 ‘진짜 주인’을 아는 것은, 소비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필요한 현실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