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섭 씨 북한 송환 촉구 시위 현수막
현존하는 세계 최장 비전향 장기수(42년5개월) 안학섭 씨는 지난 8월 20일 북한으로 가겠다고 통일대교로 진입을 시도하다 군 당국에 의해 제지되어 탈남에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열흘 정도 지난 8월 30일 안학섭 선생 송환 추진단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안학섭 씨의 북한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9월 3일자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남한에서 42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던 안학섭(95) 씨가 여생을 북한에서 마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안 씨는 김포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더딘 걸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공개됐으며, 그는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이며, 남한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강한 반미 정서를 드러냈다고 뉴욕 타임즈는 전했다.
전쟁 포로에서 42년 옥살이까지
안 씨는 1930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일본 식민지 시기를 보냈고, 해방 이후 북한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했다. 1952년 남한 내 공산 게릴라와 접촉하려다 체포돼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그 후 42년 4개월을 독방 위주로 복역했다.
수감 중에는 고문과 가혹 행위가 이어졌다. 그는 고춧물이 섞인 물고문, 매질, 얼음 바닥 물방울 고문 등을 견뎌야 했으며, 전향을 거부할 경우 더욱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안 씨는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버텼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즈는 전했다.
반미 운동과 귀환 염원
1990년대 중반 석방된 이후에도 그는 남한에 남아 주한미군 철수 운동을 벌였다. 자택 내부는 반미 구호와 작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입양한 딸 정미숙 씨는 미국을 풍자하는 공예 작품을 만들고 있다.
안 씨는 “나는 미국 식민지인 남한에서 묻히고 싶지 않다. 남은 삶은 북에서 보내고, 옛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며 북한 송환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다만 남북관계 악화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남한은 부유하지만 자유롭지 않다”
안 씨는 남한 사회를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평가하며, 북한이야말로 “유일하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조국”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건강이 쇠약해지고 기억력이 흐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반미·친북적 신념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 9월 2일 촬영, 통일부 제공 사진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지난 2000년 9월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거쳐 북측 지역으로 송환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안학섭 씨와 같은 비전향 장기수가 북측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