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가 다시 한 번 부동산 시장의 중심에 섰다. 전용 198㎡(60평) 규모의 아파트가 105억 원에 매매되면서, 단지 최초의 ‘100억 클럽’ 가입 사례가 나온 것이다. 매수자는 39세의 미국 국적 한국계 남성으로, 거래 시점은 정부가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발표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수십억 원의 대출을 동원해 계약을 성사시켰고, 규제 시행 직전 등기를 마쳐 각종 실거주·대출 규제를 피했다. 이번 사례는 단순한 초고가 매매가 아니라, 외국인 규제 제도의 허점과 정책 신뢰성 문제를 드러내며 시장의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번 거래는 지난 4월 23일 체결됐다. 압구정 현대 1·2차 단지 전용 198㎡ 9층 매물이 105억 원에 손바뀜한 것이다. 소유권 이전은 8월 20일 완료됐고, 등기부에는 농협은행을 채권자로 하는 62억 원대 근저당이 설정됐다. 매수자가 단순한 현금 부자가 아니라 대출을 최대한 끌어들여 거래한 ‘영끌’ 사례였음이 확인된 셈이다. 문제는 이 시점이 정부의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 발표 불과 넉 달 전이었다는 점이다. 8월 26일부터 서울 전역이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인은 아파트 매입 시 지자체 허가, 2년 실거주, 자금 증빙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A씨는 규제 발효 직전에 계약과 등기를 마쳐 이 모든 조건을 피해 갔다.
압구정 현대, 왜 상징적인가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70~80년대 조성 이후 서울 부동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강남 개발 신화의 출발점이자,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특히 전용 198㎡는 희소성이 커서 자산가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이번 거래 전까지 같은 평형 최고가는 약 95억 원대였는데, 100억 원을 넘어선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후 같은 단지 내에서 120억127억 원에 달하는 매매가 이어지며 ‘압구정 현대=초고가 시장의 바로미터’라는 인식이 강화됐다.
이번 거래는 압구정만의 특수 사례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외국인들의 초고가 아파트 매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남더힐에서는 미국인이 120억 원에 집을 샀고, 반포자이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매수자가 74억 원에 매입했다. 몰타 국적 매수자가 연세리버테라스를 69억 원에 산 사례도 있다. 외국인 보유 주택은 2022년 약 8만 3천 가구에서 2024년 10만 가구로 늘었다. ‘외국인 수요’가 고가 주택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번 사건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단순히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내국인은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다주택자 대출 금지,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실거주 의무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하지만 A씨는 규제 시행 이전 거래를 통해 이런 조건들을 피해갔다. 그 결과 내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초고가 아파트를 확보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문가들은 규제 발표와 시행 사이의 시간차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제도가 발표되면 그 사이를 노린 투기성 수요가 몰리게 되고, 규제가 본격 시행될 무렵에는 이미 ‘뒷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압구정 현대 사례는 그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정부가 외국인 투기 억제를 강조했지만, 정작 가장 상징적인 거래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이뤄진 셈이다. 정책 신뢰성에 금이 가는 이유다.
105억 원 매매는 단지의 가격 기준선을 바꿔놓았다. 100억 원 선이 현실화되면서 매도자들의 기대치는 높아졌고, 인근 단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외국인 수요가 초고가 주택 시장을 지탱하는 새로운 변수라는 점이 부각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버블인지, 아니면 한국 부동산의 새로운 수요 구조 변화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도적 보완 없이는 비슷한 사례가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압구정 현대 105억 거래는 단순히 기록을 세운 한 건의 계약이 아니다. 외국인 수요와 정책 공백이 교차하며 발생한 상징적 사건이다. 내국인과 외국인 간 규제 형평성 문제, 정책 설계의 허점, 초고가 주택 시장의 새로운 수요 구조 등 복합적 과제를 던졌다. 결국 이 거래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규제는 예외 없는 적용과 신속한 시행으로만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장은 정책보다 항상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