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5세 시대 곧 온다”…노동시장 새판짜기, 중소기업은 ‘속앓이’
정부와 여당이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공식 추진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고령자 소득 보장을 이유로 든 정책이지만, 현장 반응은 극명히 엇갈린다. 특히 중소기업계에서는 인건비 부담, 청년고용 위축, 직무효율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년연장 논의는 수년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여당이 입법 추진을 공식화하며 속도가 붙었다. 국민의힘은 정년 65세 연장을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고용노동부와 대통령 직속 미래노동시장연구회도 긍정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년 연장은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정책”이라며 사회적 합의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83.6세(OECD 상위권)에 달한다. 반면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고정되어 있어, 은퇴 후 무려 20~30년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시점(만 65세)과 은퇴 시점 간의 5년 격차는 노인 빈곤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고용노동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국민연금 조기 고갈을 막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정년제 개편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고령자 노동참여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재고용지원, 직무 재설계, 임금체계 개편, 세제 인센티브 등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특히 인건비 압박이 큰 중소기업계에서 정년연장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인사담당자의 63.7%가 정년연장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는 ▲임금 부담 증가(82.3%) ▲청년고용 위축(41.5%) ▲업무효율 저하(36.7%) 등이 지목됐다.
서울 금천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58) 대표는 “60세 넘은 직원은 기술은 뛰어나지만,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며 “연차로 인해 임금은 높고, 청년 채용은 막히는 구조가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호봉제 중심 임금구조를 유지하는 기업은 정년연장 시 임금과 생산성 간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년연장 논의는 필요하지만, 기업 규모·업종별로 탄력적인 적용과 보조금 지원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정년연장을 적극 지지한다. 한국노총은 “고령화에 따라 고용 안정과 소득 보장, 국민연금 수급 이전 공백 메우기라는 측면에서 정년연장은 정당하다”며, 특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고령 노동자들을 위한 재교육, 재배치, 임금체계 개편 등을 함께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5.6%로 OECD 1위에 해당한다. 정년이 연장되면 일정 수준의 소득 보장과 고령자 고용 안정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노동계 내부에서도 “임금피크제, 정년 후 재고용 등의 방식이 현실적으로 병행돼야 하며, 고령자 일자리의 질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는 현실론도 존재한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정년을 65세 또는 그 이상으로 두고 있다.
국가 | 법정 정년/제도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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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법정 정년 60세, 65세까지 계속고용 의무화 (2021년부터) | 70세까지 고용 노력 의무도 포함됨 |
독일 | 법정 정년 65~67세 | 연금 개시 연령과 연동 |
프랑스 | 법정 정년 64세 | 2023년 연금개혁 통과 |
덴마크 | 정년제 폐지 | 개별 계약 기반 운영 |
특히 일본은 ‘계속고용제’를 중심으로 고령자의 고용 안정성과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기업과 정부가 고령친화 환경 구축에 협력하고 있다. 이는 국내 정년연장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벤치마크 사례다.
국회와 정부는 정년연장 법안을 2025년 내 국회에 발의 및 통과시키고, 이후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 규모, 업종, 공공/민간 부문에 따라 시차를 두고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할 방침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년연장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 간 조율”이라며, 특히 임금체계 개편·재고용제도·고령자 직무개편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청년실업·고령자 노동빈곤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년 65세 시대’는 더 이상 가상의 담론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미 현실적인 추진 계획을 마련 중이고, 노동계와 일부 산업계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고령자 직무 적합성, 청년고용과의 균형 문제 등 복합적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정년연장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근본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정책의 방향뿐만 아니라 속도와 방식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