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르다. 일본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연령대가 한국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기자가 전하는 일본 초고령화 사회의 첫 인상이다.
"좋은 의미일 수도 있어요. 정년퇴직한 후에도 여러 가지 밖에서 일을 하는 건 일본 사람들이 많이 하거든요. 그런 일자리도 많고, 몸이 건강한 사이에는 계속 일할 수 있는 게 일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면엔 복잡한 현실이 있다. 시부야의 작은 건널목에서 목격한 장면이 상징적이다. 차도가 왕복 2차선밖에 안 되는 좁은 길, 그곳에서 두 명의 노인이 신호를 안내하고 있었다. 한 명이면 충분할 일을 두 명이 하는 이유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일본 사회의 모든 것이 노인들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나리카와 기자는 말한다. 그 중심에는 '단카이 세대'가 있다. 1947~1949년생으로 일본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 사람들이 젊었을 때는 학생운동이라든가 안보투쟁도 하고, 늘 사회의 중심 세대거든요. 존재감이 있는 세대예요. 그래서 신문사에서 신문 만들 때도 그 세대에 맞춰서 해요. 소비의 중심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다른 세대가 소외된다는 점이다. "우리 세대는 뭔가 매번 주인공이 못하는 느낌이에요. 세대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바깥에 있는 느낌이 있거든요."
이는 한국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의 50~60대가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정책 역시 이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라는 전국 단위 선거 때문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나리카와 기자는 초등학교 때 버블 붕괴를 경험했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침체기였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차를 사고 싶다거나 그런 야망을 갖기 쉽지 않아요. 그냥 안전하게, 소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정도거든요."
이런 경험이 일본 젊은 세대의 희망을 앗아갔다. "젊은 사람들이 늘 뭔가 우리한테 척척 맞춰지는 거 없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점점 좀 활력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반면 한국은 IMF 위기 이후 일찍 정년이 불안정해지면서 40~50대부터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것이 오히려 한국의 빠른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자가 소유 여부가 중요한 사회적 기준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저희도 부부가 집을 안 사고 월세로 살고 있는데, 그런 걸 별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제일 큰 건 지진이 있으면 한 번에 집이 없어질 수 있잖아요. 대출만 남은 걸 많이 봤거든요."
버블 붕괴의 쓰라린 경험도 일본인들을 부동산 투자에서 멀어지게 했다. 대신 이자도 별로 없는 은행 저축을 선호한다.
일본의 초고령화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특히 치매 돌봄 산업이 대표적이다. 나리카와 기자는 아사히신문 재직 시절 1년간 치매 관련 취재를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한 두세 명 자식들이 부모님을 보는데, 그게 둘이 되고 한 사람이 되고 없어지잖아요. 그 산업이 진짜 돌봄 산업 같은 거, 그런 거는 일본이 되게 빨리 준비해서 지금 잘 하고 있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부분이 있어요."
흥미로운 건 일본도 돌봄 인력 부족을 해외에서 충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 등에서 온 20대 초반의 젊은 외국인 돌봄 인력을 일본 노인들이 오히려 반겨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 돌봄 인재는 거의 60대 이상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으니까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일본이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만든 건 언어의 힘이었다. '치매'라는 부정적 용어를 '인지증'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약간 집에서 안 보이게 해야 되는 존재였어요. 치매 환자가 집에 있다는 거는 알리면 안 되는 것처럼 했었는데, 인지증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뿐인데도 되게 사람들이 좀 많이 얘기하고 그렇게 되었어요."
나리카와 기자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변화의 힘'과 '지속의 힘'으로 구분했다. 한국은 디지털화 등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만, 못 따라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일본은 변화가 느리지만 그것이 오히려 친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고령화가 진행되면 더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일본의 좀 느린 문화에서 배울만한 것들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가 한국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역 의료 인프라의 균형 발전이다. "일본은 진짜 지방에 괜찮은 병원들이 많아요. 그래서 지방에서 못하는 건 없거든요. 그냥 거기서 살 수 있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나리카와 기자는 자신의 책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정말 일본은 다양하고 얘기하는 사람, 쓰는 사람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일본, 일본인이 보일 거예요. 어떤 한 일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이 곧 맞이할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해답은 획일적인 정책이 아닌, 다양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