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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율법으로 버틴 45년 … 이란 반정부 시위, 신정정치의 한계가 드러나다
  • 장한님 편집장
  • 등록 2026-01-12 13: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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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위에 이슬람 율법
  • 세계 최악의 여성 인권 유린
  • 투표로는 안된다는 이란인들의 인식

이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모습(왼쪽: 인스타그램 계정 ‘johnnynash121’ / 오른쪽: 인스타그램 계정 ‘afshinismaeli’ 캡처)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2주 넘게 이어지며 격화하고 있다. 이란 인권단체 HRANA(Human Rights Activists News Agency)는 최근 2주간 시위 관련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섰고(시위대 490명, 보안요원 48명), 체포자가 1만 명 안팎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란 정부는 공식 피해 규모를 내놓지 않은 채 “폭도”와 “외부 선동”을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시위 확산과 동시에 통신·인터넷 차단도 반복됐고, 해외에서도 유럽 주요 도시 연대 집회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위가 이어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진압을 ‘레드라인’으로 언급하며 강경 대응 옵션을 시사했고, EU는 이란 당국에 과잉 진압 중단과 시민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빵값’에서 ‘체제’로… 시위의 첫 불씨는 경제 붕괴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경제 위기였다. 물가 폭등, 통화가치 급락, 생필품 가격 급등이 민심을 흔들었다. 외신들은 시위가 처음에는 “못 살겠다”는 생계 항의에서 시작됐지만, 빠르게 “정권 퇴진”과 “체제 전환” 구호로 옮겨갔다고 전했다. 

현장 확산 속도도 이례적이다. HRANA는 시위가 31개 전 주(州)로 번졌고, 수백 개 지역·도시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 진압과 체포, 정보 차단이 이어지면서 사상자 규모는 정확한 검증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 알리 하메네이.jpg이란은 형식상으로는 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신정 체제이다. 헌법상 최고 권력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인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에게 있다.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는 1989년 취임해서 현재까지 35년 이상 장기 집권 중이다. (사진: 이란 최고지도자실(Khamenei.ir) / Wikimedia Commons)


 

 

 

법 위의 종교’… 이란을 움직이는 핵심 구조, ‘성직자 통치’

이란의 정치 갈등을 이해하는 관건은 ‘법치’보다 ‘종교적 정당성’이 상위에 놓인 권력 구조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은 성직자(율법학자)가 국가의 최종 권위를 갖는 체제를 구축해 왔다. 이른바 ‘파키(이슬람 법학자)의 통치/후견’ 개념이 헌정 질서의 핵심이 됐고, 최고지도자는 군·사법·방송 등 국가 핵심 기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이 구조 안에서 선거와 의회는 존재하지만 유명 무실해졌고, 체제의 상부—성직자 권력과 그 주변 권력기관—가 실질적 ‘최종 판단권’을 쥐는 방식이 반복돼 왔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이 표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회의가 커져온 배경이다.

 


 

사회 통제의 일상화… ‘도덕 경찰’과 여성 인권의 구조적 충돌

‘법보다 종교가 위’라는 현실은 특히 여성 인권과 일상적 자유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란의 ‘도덕 경찰’(Guidance Patrol)은 히잡 등 복장 규범과 ‘도덕’ 규범을 단속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됐고, 여성의 복장·행동을 국가가 직접 규율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2022년 9월, 히잡 착용 문제로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구금 뒤 사망한 사건은 대규모 항쟁을 촉발했다. 당시 시위는 “여성, 생명, 자유” 구호로 확산하며, 단순히 복장 규정 반대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삶을 종교로 재단하는 체제’에 대한 전면 반발로 번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시위 역시 경제가 불씨였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생활 통제’와 ‘인권 억압’으로 연결되며 체제 반대의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2022년의 경험이 누적된 자산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녹색혁명.jpg2009년 이란의 녹색운동 모습(사진: Hamed Saber / Wikimedia Commons)


 



2009년 ‘녹색운동’의 상처… “투표로는 못 바꾼다”는 학습

이란 현대사의 또 다른 분기점은 2009년 대선 이후의 대규모 시위(이른바 ‘녹색운동’이라 불린다. 이 시위는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이 선포된 6월 대선 결과에 대한 부정선거 항의로 시작되어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된 시민 저항 운동으로, '녹색'은 개혁과 희망을 상징하며 젊은 세대와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한 반정부 시위였다)다.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며 수백만 명이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는 등 대규모 항의가 이어졌지만, 이란 정권의 실탄 진압, 지도자 가택 연금, 시위 참여자 수천 명 체포 등 강경 진압으로 무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란 시민들의 머리 속에 “투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각인되었다. 

많은 국제사회 보고와 연구·기록물도 2009년이 ‘제도권 변화’에 대한 기대가 꺾이는 계기였다고 정리한다. 

그 뒤 이란에서는 경제난·부패·제재가 맞물린 위기 속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반복됐다. 2017~2018년 생계 시위, 2019년 유가(휘발유) 가격 인상 시위는 특히 강경 진압과 큰 희생을 남겼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는 “비폭력 시위와 선거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출구가 막혀 있다”는 인식이 사회에 누적되는 데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많다. 

 


 

결정적 계기: 2025년 12월 28일, ‘경제 항의’가 다시 폭발했다

이번 국면은 2025년 12월 28일 시작됐다. 국제 인권단체와 외신 보도는 ‘급격한 물가·환율 악화’가 시위의 시작점이었다고 전했다. 시위는 도시 상권·상인층의 움직임과 대학가 참여를 거치며 전국으로 확산했고, 시간이 갈수록 “정권 퇴진”을 직접 겨냥하는 구호가 늘었다. 

여기에 1월 들어 통신·인터넷 차단이 겹치며 긴장은 더 높아졌다. 외신은 “인터넷이 빵보다 절실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보 차단이 경제·생활 전반을 마비시켰다고 전했다. 네트워크 차단은 시위 조직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시민 불만을 더 자극하는 역효과도 낳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로 번진 연대… 유럽 도시·미국 LA에서도 시위

시위는 국경 밖에서도 이어졌다. 유럽 매체들은 통신 차단 속에서도 파리·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서 연대 집회가 열렸다고 전했고, 미국 LA에서는 반(反)신정 시위 현장에서 차량 돌진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긴장 장면이 포착됐다. 

해외 망명·디아스포라(재외 이란인) 사회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일부는 세속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강조하고, 일부는 왕정 상징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영국의 망명 여성 활동가들을 다룬 보도는 “성직자 독재도, 왕정 독재도 반대”라는 경계심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란인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신정 종식, 그리고 ‘진짜 선거’

이번 시위대가 한 목소리로 합의한 ‘완성된 헌정 설계도’가 존재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외신과 인권단체·현장 구호를 종합하면, 공통된 핵심 요구는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신정정치의 종식이다. 즉 “성직자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끝내자는 요구다. 


둘째, 국민의 민주적 투표가 권력 교체로 실제 연결되는 민주주의 체제다. 선거가 ‘형식’이 아니라 ‘정권을 바꾸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셋째, 여성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개입 중단이다. 히잡 강제와 도덕 단속, 표현의 자유 제한을 체제 문제로 인식하는 흐름이 강하다. 

 

요컨대, “누가 통치하느냐”보다 “국민이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느냐”가 요구의 중심에 놓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사회 반응: “자제 요구”와 “개입 경고”가 동시에

국제사회는 ‘진압 중단’ 요구를 공통으로 내놓으면서도, 접근 방식은 갈린다. EU는 이란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언급하며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프랑스 외교 소식통도 “정당한 시위 권리”를 거론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란 지도부는 외부 개입을 “음모”로 규정하며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해 국제 사회 긴장이 극도로 상승하는 모습이다. 

 


 

앞으로의 변수: ‘조직화’와 ‘권력기관 균열’, 그리고 피로감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2009년의 선거 충격, 2019년의 경제 폭발, 2022년의 여성 인권 항쟁”이 누적된 결과로 터졌다고 본다. 동시에 시위의 향방은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고 본다. 첫째는 시위의 조직화와 지속성, 둘째는 혁명수비대 등 권력기관 내부 균열 여부, 셋째는 장기화에 따른 시민 피로감과 강경 진압이 낳는 공포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경제 항의로 시작된 불만이 곧바로 ‘체제 전환’ 요구로 번지는 현상은 이란 사회에서 ‘법보다 종교가 위’에 놓인 구조가 얼마나 깊게 갈등을 축적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 수정이 아니라, 신정정치를 끝내고 국민의 투표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이란 현대사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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