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반대 운동 = X캡쳐독일에서 ‘징병제(Wehrpflicht) 부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2011년 징병 의무를 중단한 뒤 직업군 중심으로 유지돼 온 독일 연방군(분데스베어)이 인력난을 겪으면서, 정부·여권은 2026년부터 18세 남성 대상 의무적 등록·설문(의향/적합성 확인)을 시작하고, 목표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의무 복무(사실상 징병)로 전환할 수 있는 장치를 법에 걸어두는 방식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이 ‘징병제의 귀환’ 신호가 강해질수록, 현지에서는 반대로 “강제 동원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는 위기감도 커진다. 학생·청소년 시위, 평화단체의 캠페인, ‘의무 설문에 불복하자’는 시민불복종 호소까지 나오면서, 독일 사회는 다시 한번 “국가안보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충돌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독일 정부 구상은 한마디로 ‘선(先)자발, 후(後)의무’에 가깝다. 2026년 1월부터 18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복무 의향과 건강·역량 등을 묻는 설문(남성 의무, 여성은 선택)을 돌리고, 관심 표명자를 중심으로 선발·의무검진 절차를 확대한다는 게 큰 틀이다.
여기서 논쟁의 핵심은 “이게 정말 자발적이냐”다. 정부·여권은 ‘징병제 부활’이 아니라 인력풀을 되살리는 현대식 군복무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반대 진영은 “남성에게 설문 제출을 의무화하는 순간, 이미 강제의 문턱을 넘었다”고 본다.
징병제 반대 운동 = X캡쳐
2025년 12월 초, 독일 곳곳에서 청소년·학생 주도의 반대 행동이 가시화됐다. 독일 언론들은 연방의회가 새 군복무 계획을 다루는 시점에 맞춰 여러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고, 함부르크·베를린·뮌헨 등지로 퍼졌다고 전했다.
국제 매체들도 베를린에서 수천 명 규모의 항의 집회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의회가 제도 개편을 밀어붙이는 동안, 거리에서는 “강제 복무 반대”, “자기결정권”을 내건 구호가 반복됐다.
이 움직임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세대 감각의 충돌에 가깝다. 여론조사에서 징병 부활 찬성이 일정 수준을 보이더라도, 젊은 층의 동의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평화·반전 단체인 DFG-VK(Deutsche Friedensgesellschaft – Vereinigte KriegsdienstgegnerInnen)는 징병 재가동 논의가 커지자, “Wehrpflicht? Ohne mich!(징병제? 난 빠질래!)”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내걸고 조직적 대응에 들어갔다.
2025년 11월에는, 2026년부터 시작될 제도를 “강제 조치”로 규정하며 시민불복종을 촉구하는 글도 올렸다. 요지는 “군이 요구하는 절차를 ‘당연한 의무’로 즉시 받아들이지 말고, 권리와 대응을 점검하라”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반전 네트워크도 독일의 징병 재가동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독일 군인 = X캡쳐
징병 논의의 배경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안보 환경이 바뀌었고, 독일은 병력·예비전력 확충 압박을 받고 있다. 독일 정부가 “신규 인력 확보와 예비전력 확대”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안보’가 모든 논쟁을 덮을 수는 없다. 반대운동은 “국가가 청년의 시간을 동원하는 방식이 정당한가”, “성별에 따라 의무를 달리하는 구조를 계속 둘 것인가”, “자발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제가 확대되는 것 아닌가”를 묻는다.
독일의 새 제도는 당장 전면 징병으로 복귀한 형태라기보다는, 의무적 등록·설문을 통해 인력풀을 만들고 자발 지원을 끌어올리는 모델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법·정치 설계가 “목표 미달 시 의무복무로 전환”이라는 여지를 품는 순간, 반대운동이 이를 ‘징병제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결국 관건은 숫자와 신뢰다. 분데스베어가 원하는 인력을 ‘자발’로 채울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과정이 개인의 권리와 세대의 삶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존중하느냐. 2026년 1월, 독일의 우편함(혹은 온라인 설문함)으로 들어갈 한 장의 질문지가 유럽 안보의 실험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