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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면 처벌 면제" 100년 논쟁, 막 내리다
  • 장한님 편집장
  • 등록 2025-12-31 17:51:51
  • 수정 2026-01-02 20: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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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족 간 재산 범죄 '형 면제' 폐지
  • 이제 가족이라도 고소하면 처벌 가능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산 관련 범죄 처벌이 면제되는 친족상도례가 폐지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방패이제 막을 내리다


"가족이니까..." 이 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 있다. 바로 범죄 앞에서다.

친족 사이 재산범죄에 사실상 '면죄부' 작동해  이른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가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친족 간 재산범죄 처벌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이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30일 "친족의 범위를 불문하고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를 친고죄로 일원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국무회의 의결까지 마치면서 공포와 시행만을 남겨두게 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단순하다. 그간 가장 큰 비판을 받아온 '근친   면제(처벌 면제)' 조항을 없애고가족·친족  재산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을  처벌이 가능하도록 정비한다는 것이다.


 

대한제국 형법대전 원본과 해석 이미지.png

대한제국 형법대전 중 친족상도(親屬相盜)조항 원본 이미지(오른쪽)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항 해석(왼쪽): 친족이 절도했을 경우 감경한다는 조항(노란색 표시)이 있다.




 

대한제국 '감경'에서일제 '면제'… 규칙이 바뀐 1912


친족상도례는 "가족끼리 생긴 재산 다툼에 국가 형벌권이 어디까지 들어갈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법 역사에서도 '친족 간 절도'를 가볍게 처벌하려는 흔적은 있었지만, '처벌을 완전히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제국기 법전인 「형법대전」(1905)은 '親屬相盜(친족상도)' 조항을 뒀다. 하지만 친족이 서로 훔친 경우 일반인보다 형을 단계적으로 '감경'하는 방식이었다. 조문 말미에는 『대명률』 을 근거로 표기해, 전통 법체계의 연속성을 분명히 했다.

친족 간 재산 범죄에 대해 처벌은 하되가볍게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1912 '조선형사령' 시행을 기점으로 구조가 바뀌었다. 조선형사령의 시행과 함께 형법대전은 폐지되었고, 식민지 조선에서의 형사 사건은 일본 형법을 가져다 쓰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즉,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조선 안에서의 형사 사건은 기본적으로 일본 형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형법은 배우자·직계혈족·동거친족 등을 상대로  절도 등에 대해 " 형을 면제(Exculpated)"하는 조문을 두고 있었다. 대한제국기 형법대전의 ‘감형’이 일제강점기에 아예 ‘면제’로 더 처벌이 불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그래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만약 대한제국기의 '감경 모델'이 근대화 과정에서 더 발전해 이어졌다면, 가족 범죄가 '전면 면제'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953 형법의 ' 면제': 2024년까지 이어진 "가족 범죄의 빈틈논란


해방 후 제정된 대한민국 형법에도 친족상도례가 자리 잡았다. 일본 형법에서 온 가까운 친족 간 재산범죄에 '형 면제'라는 제도가 유지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법을 악용한 친족 간 재산범죄 다툼이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해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일률적 형 면제"였다. 헌재는 2024년 6월 27일,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부분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봤다. 법관이 구체 사정을 고려할 여지 없이 획일적으로 면제 판결을 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작년에 친족상도례라는 제도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해당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박수홍 사건' 던진 질문… "가족이라는 이름이 법의  범죄자의 방패가 되나"


친족상도례 논란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계기 중 하나로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이 거론된다.

박 씨는 친형 부부를 상대로 횡령 피해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부 보도에서는 부친이 검찰 조사에서 '자금 관리는 자신이 했고 횡령 주체도 자신'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며 "형 면제 조항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됐다.

다만 이 사건 자체는 수사·기소 과정에서 "친족상도례가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되는가"라는 법리 논쟁도 함께 낳았다. 검찰은 친족상도례와 별개로 기소가 이뤄진 부분이 있다는 취지의 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의 문이 닫힐  있다" 불안감은 사회적 공감대를 크게 키웠다.

 

 


 

"면제" 접고 "고소"… 국회 통과 개정안의 의미


이번 개정안은 '가족이면 처벌 면제'라는 출발점 자체를 없앤다.

가족  재산범죄는 피해자 고소가 있을  처벌할  있는 '친고죄체계로 정리됐다. 법무부는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을 충실히 반영해, 친족 사이 재산범죄는 친고죄로 일원화했다"고 밝혔다.

즉, "친족상도례 폐지"는 엄밀히 말하면 '친족상도례 전체의 소멸'이라기보다 '형 면제의 폐지'에 가깝다.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틀은 남지만, 가까운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이 원천 봉쇄되는 처벌 면제 제도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른 나라의 법은?: "가족 면책제도 각양각색


해외에도 가족 간 재산범죄를 완화하는 규정은 존재하지만 그 형태는 제각각이다.


일본: 친족 사이 절도 등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 없이는 기소할 수 없도록 한 조문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1953년 한국의 형법과 가장 유사)


스페인: 배우자·직계·형제자매 등 사이 재산범죄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되, 폭력·협박 또는 피해자 취약성(연령·장애 등) 악용이 있으면 면책을 배제한다는 예외를 명문화했다.


독일: '집안·가족 절도'에 대해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신청이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아직도 남은 문제들


이번 개정안은 이제 공포·시행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아직 남은 문제도 분명하다.


"고소가 어려운 가족 관계에서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
취약한 피해자를 위한 고소기간·대리 고소·보호명령 등은 충분한가?"


가족 범죄 형 면제라는 100년 논쟁의 한 장이 넘어갔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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