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연말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한 해를 정리하던 시상식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말 시상식’은 분위기가 뜨겁다기보다, 조용히 지나가는 쪽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콘텐츠 재미” 문제가 아니라 시청 습관, 플랫폼 구조, 산업의 돈 흐름, 신뢰의 문제가 한꺼번에 겹친 결과로 본다.
가장 큰 변화는 시청 장소가 TV 거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 보도에 따르면, OTT 이용이 늘고 OTT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비율이 90%대까지 높게 나타난 흐름이 잡힌다.
또 콘텐츠진흥원(콘진원) 자료는 숏폼 이용의 일상화와 함께 “재미있는 부분만”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2~4시간짜리 생방송 시상식이 ‘본방 사수’ 이벤트로 작동하기 어렵다. 결국 시청은 하이라이트 클립 소비로 분해되고, 전국이 동시에 떠들던 ‘공동 시청 경험’은 옅어진다.
지상파 3사의 연기·예능 시상식, 가요 연말 무대, 각종 K-팝 시상식까지 일정이 촘촘하다. 한 해의 ‘정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쪼개지면, 자연히 화제는 분산된다.
실제 칼럼에서는 K-팝 시상식이 늘어나는 가운데 지상파 시상식도 권위를 잃어가며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는 구조를 지적한다.
이 현상은 새 이야기가 아니다. 2006년에도 방송사 연말 가요 시상식이 위상 축소, 가수 불참, 순위·기준 잡음 등 복합 요인으로 흔들렸다는 분석이 있었다.
“너무 많아져서 덜 특별해졌다”는 말이, 숫자만큼은 꽤 오래된 진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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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이 ‘한 해 결산’이 아니라 ‘논쟁의 촉발점’이 되는 순간, 대중의 피로감은 급격히 커진다.
K-팝 분야는 특히 팬투표 비중이 큰 부문이 많고, “부정투표” 이슈가 반복적으로 거론돼 왔다. 실제로 MAMA 측이 부정 투표 논란에 대해 검증·제외 방침을 밝힌 사례도 있다.
또 최근에도 팬덤을 전면에 세운 ‘팬덤상’ 투표가 각종 시상식에서 진행되고 있다.
팬덤의 참여가 동력인 동시에, ‘내 편 vs 네 편’ 구도로 번지면 시상식은 축제보다 전장에 가까워진다. 그 순간 화제성은 커져도, “연말 분위기”는 오히려 빠진다.
지상파를 중심으로 광고 매출 하락은 구조적 압박이다. 한국기자협회보는 방송광고 매출 감소(지상파 광고매출 하락 등)를 구체적인 수치로 짚으며, 업계의 수익 기반이 약해졌다고 전한다.
콘텐츠진흥원 분석 역시 광고 수입 하락기에 방송사가 선택하는 “가장 쉬운 대응”이 제작비 축소라고 지적한다.
시상식은 ‘행사’지만 동시에 ‘대형 생방송 콘텐츠’다. 무대·연출·라인업·권위의 설계가 비용과 직결된다. 제작 여력이 줄면 시상식은 점점 “예년 같은 한 방”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2024년 말에는 제주항공 참사 여파로 지상파 3사가 연말 시상식 생방송을 취소·변경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사건은 특정 연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형 사회 이슈가 발생할 때 “축제” 성격의 콘텐츠는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연말의 들뜬 공기는 단숨에 식는다. 시상식의 ‘연말 분위기’는 콘텐츠 자체뿐 아니라 사회의 기류에도 크게 좌우된다.
유튜브 핑계고 캡쳐
대체재가 등장했다…유튜브가 ‘시상식 포맷’까지 가져갔다
최근엔 플랫폼 자체가 시상식의 무대를 대체한다. 유튜브 기반 콘텐츠가 시상식처럼 회자되는 현상을 두고 “시상식 형식이 더 이상 지상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중은 TV 생방송을 기다리기보다,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재미있는 시상식’을 클릭한다. 화제성이 이동한 것이다.
업계에서 거론되는 처방은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 본방을 강요하기보다 디지털-first로 설계하고, 하이라이트가 아닌 “전체 서사”를 짧고 촘촘하게 재구성할 것.
둘째, 수상 기준과 집계 과정을 더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회복할 것.
셋째, 시상식 수를 늘리기보다 ‘한 해의 한 장면’을 만드는 집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연말 시상식이 예전만큼 화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재미를 못 느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변화에 맞춰 시상식이 스스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느냐가, 다음 연말의 분위기를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