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을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정작 국회 연석 청문회(12월 30~31일)에는 불출석을 택했다. ‘사과는 했는데, 책임의 자리는 비웠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사태의 출발점은 11월 29일 쿠팡이 “3,370만개 고객 계정 정보가 노출됐다”고 밝히면서다. 이름·주소·전화번호 등 민감 정보가 포함돼 2차 피해(스미싱·피싱) 우려가 확산됐다.
그런데 김 의장이 개인 명의로 사과문을 낸 건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였다. 그는 “제 사과가 늦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김 의장은 불출석 사유서에서 해외 거주 및 기존 일정 등을 이유로 들었고, 국회는 “국민과 국회를 우롱한다”는 반발을 쏟아냈다.
방송 보도에 따르면 김 의장의 국회 출석 거부는 올해만 여러 차례 반복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에서 정치권·여론이 읽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사과는 문장으로, 책임은 일정표로 피한다”는 인상이다.
쿠팡은 위기 수습 국면에서 미국 본사의 법무총괄(General Counsel) 출신 해롤드 로저스를 한국 법인 임시 대표로 세웠다. 쿠팡이 공식 보도자료로 밝힌 인선이다.
하지만 청문회 현장에선 “한국어를 모른다, 영문 자료를 달라”는 답변이 반복되며 ‘맹탕 청문회’ 논란으로 번졌다.
기업이 법적 방어를 위해 ‘최적의 카드’를 냈을지는 몰라도, 국민이 기대한 건 ‘최고책임자의 설명’이었다. 그 간극이 신뢰를 갉아먹는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쿠팡이 법률·준법 라인을 전면에 세워 리스크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해석은 여러 보도에서 확인된다.
더 나아가, 과거 내부 문건을 근거로 “김 의장을 한국 법인의 책임에서 분리하려는 논의 정황”을 제기한 보도도 나왔다.
여기서 여론의 의심이 커진다. “법적으로 유리한 선택(불출석·대리 출석·문구 중심 사과)을 반복하는 배경에 ‘법적 리스크 관점의 조언’이 과도하게 작동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실제로 쿠팡은 자체 조사 결과 발표를 둘러싸고 “정부와 소통 없이 결론을 먼저 제시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법무적 관점에서 사과는 늘 딜레마다. 사과가 책임 인정으로 비칠까 우려해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위기 커뮤니케이션·법학 논의에서 반복돼 온 주제다. 기업 사과가 법적 책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룬 연구(예: Patel & Reinsch, 2003)도 있다.
동시에 최근 연구들은 “사과가 오히려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제시한다. 단순 사과가 아니라 재발 방지·개혁 신호(reform signals)가 동반될 때 효과가 커진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즉, ‘처벌을 피하는 게 최우선’처럼 보이는 순간, 기업은 법정 밖에서 더 큰 비용(신뢰 상실)을 치른다. 온라인에서 “법꾸라지 조언 아니냐” 같은 거친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그 지점에서다.
이번 논란은 정보유출의 기술적 원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핵심은 최고책임자의 출석, 질의응답, 피해자 관점의 설명 같은 ‘태도’다. 김 의장이 불출석을 고수할수록, 쿠팡의 선택은 “국민 공감보다 법적 방어”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는 법무가 필요하다. 다만 법무가 ‘경영의 전부’가 되는 순간, 위기 대응은 법정 논리로만 설계되고 국민 정서는 방치된다. 쿠팡이 지금 마주한 건 수사·소송만이 아니라, 신뢰의 청문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