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로켓 프레시 배달박스 = 메인타임스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이 최근 다시 거칠어졌습니다. 한국에서 벌어진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쿠팡은 한국을 ‘모기업의 근거지’로 대하기보다 ‘거대한 시장’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지배구조와 위기 대응의 방향이 한국 사회의 상식과 어긋난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쿠팡이 한국의 규제·정치 환경과 충돌할 때, 국내에서 문제를 푸는 모습보다 워싱턴의 로비·대관 네트워크가 더 강하게 부각되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동인도회사 같은 제국주의 기업의 문법과 닮았다”는 비유까지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는 역사적·정치적 은유이지만, 은유가 작동하는 데에는 현실의 ‘팩트’들이 바탕이 됩니다.
쿠팡의 미국 로비 활동은 이제 ‘소문’이 아니라 공개자료로 확인됩니다. 미국 상원 로비공개(LDA) 보고서상 쿠팡은 분기별로 수십만 달러 규모의 로비 비용을 신고해 왔고(예: 2025년 2분기 52만 달러), 한국 언론들은 “2021년 8월 이후 누적 1천만 달러 이상”이라는 집계도 내놓고 있습니다.
로비 ‘인프라’도 따로 구축했습니다. 쿠팡은 자사 채용 공고에서 워싱턴 D.C. 오피스를 전제로 “Global Government Affairs” 조직과 정책·커뮤니케이션 역할을 명시합니다. 또한 과거 미 국무부 출신 인사를 대관 라인에 영입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유가 시작됩니다. 전통적인 제국주의 기업들은 식민지(또는 해외 거점)를 “협상 상대”라기보다 “관리·통치·수익화 대상”으로 바라봤습니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은 그 정도의 권력을 갖지 않지만, 규제 충돌을 ‘외교·통상 프레임’으로 끌어올리려는 유인은 분명 존재합니다. 최근엔 미국 정치권 일부에서 한국의 쿠팡 조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보도되며, 이 논란이 “코리아-워싱턴” 라인을 타고 커지고 있습니다.
델라웨어 거리 = 픽사베이
쿠팡은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상장·지배구조의 최상단은 미국(델라웨어) 법인인 Coupang Inc.입니다. 이 회사가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하고, 듀얼클래스(의결권 차등) 구조로 창업자에게 의결권이 집중돼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 구조가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 회사냐 한국 회사냐”가 아닙니다. 위기 국면에서 한국 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국내 이해관계자(이용자·국회·정부) 앞에서의 직접적인 책임 설명입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 파문 과정에서 창업자가 국회 청문 절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한국은 시장일 뿐, 책임의 무대는 아닌 것 아니냐”는 인식이 강화됐습니다.
이번 논란을 키운 방아쇠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 자체입니다. 로이터는 정부 당국이 쿠팡의 일방적 발표에 반발하며 “조사 중”임을 강조하는 등, 사태가 단순 보안 사고를 넘어 정부-기업 간 신뢰 문제로 번졌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쿠팡이 워싱턴 로비를 통해 한국의 규제 대응을 압박한다”는 관측이 결합하면서, 청와대(대통령실) 차원의 긴급 회의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즉, 국내 규제 사안이 한미 관계·통상 프레임으로 확대되는 양상 자체가 한국 정부 입장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 = 위키미디어 퍼블릭 도메인
동인도회사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국가 권력과 결합해 해외에서 준(準)통치 기능까지 수행했습니다. 오늘날 쿠팡을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적으로 과장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비유가 대중적으로 먹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기업은 한국을 ‘공동체의 일부’로 대하나, 아니면 ‘수익이 나는 시장’으로만 대하나.”
로비는 합법이고, 다국적 기업이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델라웨어에 법인을 두는 것도 미국 기업 생태계에서는 일반적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여론이 묻는 질문은 더 정서적이고, 동시에 더 정치적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사업의 편의’만큼 ‘사회적 책임의 언어’도 커져야 하는데, 그 균형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비유는 훨씬 거칠어집니다.
쿠팡이 이 논쟁을 돌파하려면, 로비의 크기를 줄이느냐보다 더 중요한 숙제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한국의 절차와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 (국회·정부·이용자 커뮤니케이션)
둘째, 지배구조가 만들어내는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책임의 최정점(최종 의사결정권자)이 한국 사회의 검증대 앞에 서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셋째, 규제 충돌을 외교·통상 프레임으로 비화시키는 순간 기업은 단기적으론 숨통이 트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제국주의 기업” 같은 거친 낙인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쿠팡을 향한 ‘제국주의 기업’ 프레임은 감정적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장이 힘을 얻는 순간은 늘 같습니다. 책임은 현지(한국)에 남겨두고, 해결은 본국(워싱턴)에서 가져오려는 듯 보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