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크리스마스에 그린 뱅크시의 '노숙하는 아이들' = 뱅크시 인스타그램
(런던=종합) 성탄절을 코앞에 둔 런던에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은 두 아이가 겨울 옷차림으로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담았다. 장소는 서런던 베이스워터(Bayswater) 퀸스 뮤스(Queen’s Mews) 인근, 차고(garage) 위 벽면. 뱅크시는 자신의 공식 채널에 이미지를 올리며 작품을 사실상 확인했다.
작품은 ‘연말 분위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크리스마스의 반짝임이 도시를 덮을수록, 거리의 아이들은 더 투명해진다. 두 아이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지만,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저 아이들은 어디서 잠을 자나”라는 질문이다.
영국 언론과 해외 매체들은 이 작품이 아동 노숙·빈곤 문제를 겨냥한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고 전했다. 바쁜 도심의 시선에서 쉽게 밀려나는 존재를 ‘정지 화면’으로 붙잡아두는 방식은 뱅크시가 반복해온 화법이기도 하다.
2019년 버밍엄에 그려진 '산타의 썰매' 뱅크시의 작품 - 뱅크시 인스타그램
흥미로운 대목은 동일한 이미지가 런던 중심부 센터포인트(Centre Point) 타워 인근에서도 목격됐다는 점이다. 다만 이 두 번째 작업은 공식 확인이 없어 ‘뱅크시 작품으로 추정’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센터포인트라는 장소가 던지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이 지역은 과거 주거 불평등 논쟁과 맞닿아 왔고, 노숙 청소년 지원 자선단체 ‘센터포인트(Centrepoint)’의 이름 또한 이 건물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뱅크시가 ‘어디에’ 그렸는지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때가 있다.
뱅크시 작품의 숙명은 빠른 훼손과 은폐다. 일부 매체는 이번 벽화 역시 확인 직후 가려지는 등 ‘짧은 생명’을 예고했다고 전했다. 작품이 남는 시간이 아니라, 작품이 사라지는 속도 자체가 도시의 무심함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2018년 포트탤벗에 그려진 '재 먹는 아이' 뱅크시의 작품 = 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가 연말에 던지는 메시지는 대체로 ‘축복’이 아니라 ‘현실 점검’에 가깝다.
2019년 12월, 버밍엄 주얼리 쿼터에 등장한 벽화는 벽면의 순록 그림과 거리의 벤치를 결합해 ‘산타의 썰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썰매에 누운 사람은 노숙인이었고, 뱅크시는 이를 영상으로 공개하며 ‘따뜻한 계절의 냉혹한 이면’을 부각했다.
2018년 포트탤벗(웨일스)에서는 아이가 눈을 받아먹는 듯한 장면이, 다른 각도에서는 공장지대의 재(ash)를 먹는 장면으로 뒤집히며 대기오염을 고발했다. 크리스마스 인사말(Season’s Greetings)이 ‘환경 재난’의 알림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런던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아이들이 별을 올려다보는 밤, 도시가 그 아이들을 어디에 눕혔는가. 크리스마스는 원래 ‘환대’의 계절이지만, 뱅크시는 그 환대가 누구에게는 배제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반짝이는 장식 아래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라짐을 “보게 만드는” 예술. 뱅크시의 연말 행보는 올해도 불편하게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