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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 왜 ‘역대급 순위’ 노려볼 만한가 —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편성 분석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끝나면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길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은 개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유럽 플레이오프 D조 승자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첫 48개국 체제, 32강 토너먼트 도입, 사상 첫 포트2 배정까지 겹치며 “역대급 순위”를 노려볼 수 있는 조건이 동시에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상 첫 포트2, ‘죽음의 조’는 비켜섰다
이번 추첨에서 한국은 FIFA 랭킹 22위를 바탕으로 월드컵 사상 처음 포트2에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최상위 강호들이 몰려 있는 포트1·포트2의 동시 중복을 피하면서, 이른바 ‘죽음의 조’ 시나리오에서 한 발짝 비켜서는 데 성공했다.
포트1에서는 브라질·프랑스·잉글랜드 같은 절대 강호 대신 개최국 멕시코가 A조 시드로 배정됐다. 멕시코는 FIFA 랭킹 15위로 결코 약팀은 아니지만,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히는 팀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입장에선 “해볼 만한 1번 시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포트3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올라왔다. 남아공은 최신 랭킹 61위, 지금까지의 월드컵 성적은 모두 조별리그 탈락이다. 여기에 포트4의 유럽 플레이오프 D조 승자까지 더하면, 최상·최하 전력 없이 중간권 팀들이 모인, 이른바 “누구나 1위도, 4위도 될 수 있는 조”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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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남아공·유럽 PO… 숫자로 본 A조 전력
A조 네 팀의 윤곽을 숫자로만 정리해도 한국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멕시코는 월드컵 단골손님이자 개최국이다. 역대 최고 성적은 8강, 이번 대회 개막전도 멕시코시티 아스테카에서 남아공과 치른다. 홈 이점과 경험을 감안하면 조 1위 후보임은 분명하다.
한국은 12번째 월드컵 본선, 11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안고 북중미로 향한다. 2002년 4위 이후 16강과 조별리그 탈락을 오가며 기복은 있었지만,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층은 과거 어느 때보다 두터워졌다.
남아공은 1998년 이후 꾸준히 본선을 밟았지만 아직 조별리그를 넘지 못했다. 빠른 스피드와 피지컬, 조직적인 압박을 무기로 삼는 팀이지만, 전체 전력으로는 중·하위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럽 플레이오프 D조에는 덴마크, 북마케도니아, 체코, 아일랜드가 묶였다. 어느 팀이 올라오더라도 한 방을 가진 유럽 중견국이지만, 전통적인 ‘탑 티어 강호’는 아니다. 한국이 그간 월드컵과 평가전에서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쌓아온 경험을 고려하면, 중립지에서 맞붙을 경우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상대들이다.
결국 A조는 ‘완전한 강호도, 완전한 약체도 없는 조’. 세 경기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승점을 쌓느냐에 따라 1위부터 4위까지 모든 시나리오가 열려 있는 구도다. 강호 한 팀에 승점이 쏠리는 조보다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 48개국·32강… 수학적으로도 넓어진 길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참가국이 늘어난 첫 대회다. 4개 팀씩 12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1·2위 24개 팀과 3위 팀들 중 성적이 좋은 8개 팀이 합류해 32강 토너먼트를 구성한다.
기존에는 조 2위 안에 들어야만 16강 티켓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3위라도 승점과 득실을 잘 관리하면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조별리그에서 한 번 미끄러져도 회복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특히 A조의 경우 조 1위가 되면 32강에서 다른 조 3위 팀과 만나게 된다. 반면 2위는 B조 2위와, 3위로 올라갈 경우에는 상위 시드를 상대로 훨씬 험한 길을 가게 된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조 1위를 차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3위 팀과의 32강을 거쳐 16강·8강까지 상위 시드를 피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48개국 체제에서 16강만 가도 전체 48개 팀 중 상위 3분의 1, 8강이라면 명실상부 ‘세계 8위권’ 성적이다.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순위, 혹은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는 계단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 ‘올-멕시코 일정’이 주는 기회와 부담
조별리그 일정도 한국에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다.
A조에서 한국이 치르는 세 경기는 모두 멕시코에서 열린다. 6월 11일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사포판(과달라하라 인근)에서 유럽 플레이오프 D 승자와 첫 경기를 치르고, 18일 같은 장소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2차전을 치른 뒤, 24일에는 북동부 몬테레이 인근 과달루페의 에스타디오 몬테레이로 이동해 남아공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다.
다만 A조의 모든 경기가 멕시코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과 유럽 플레이오프 팀이 맞붙는 한 경기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다. 그럼에도 한국 입장에선 세 경기 모두를 멕시코에서 치르면서 이동 부담을 줄이고, 고도·기후에 보다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변수는 멕시코 특유의 고지대와 기온이다. 얇은 공기가 체력·수비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여기에 개최국 멕시코를 상대로 한 경기(2차전)는 사실상 “미니 결승전”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경기에서 최소한 승점 1점 이상을 지키느냐가 한국의 최종 순위를 가를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손흥민 세대의 마지막, 경험이 만든 ‘무게감’
전력 구성 면에서 이번 대표팀은 결코 가볍지 않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손흥민, 김민재, 이재성, 이강인 등 이미 월드컵과 유럽 빅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뼈대를 세웠다. 11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 이 팀은 “월드컵이 처음인 팀”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팀”에 가깝다.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2002년 4강의 한복판에 있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미 대표팀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포트2 사수를 위해 지난 2년간 A매치에서 “결과 중심 운영”을 택한 것도, 결국 이번 조편성에서 한 단계 유리한 출발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적어도 조추첨까지는 정확히 적중했다.
손흥민 세대에게 사실상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번 월드컵은, 또 하나의 본선 진출이 아니라 축구 인생 전체를 건 무대다. 경험과 절박함, 넓어진 토너먼트 문, 그리고 나쁘지 않은 조편성까지. 이런 요소가 겹칠 때 한 나라의 월드컵 순위는 예상보다 훌쩍 위로 튀어오곤 했다.
이번 A조 편성은 한국에 그런 상상을 허락하는 조합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상상을 현실로 바꿀 90분짜리 경기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