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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타임스×시한책방 서평] 반도체, AI 다음 투자처? 하버드 교수가 말하는 지금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
  • 서지원 문화 & 전시 전문기자
  • 등록 2025-12-03 17:42:49
  • 수정 2025-12-03 17: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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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버드가 나눈 우주경제 3단계: 구축·정교화·조율
  • 스페이스X·플래닛·애스트로스케일, 우주 기업들의 다양한 얼굴
  • 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로 읽는 우주산업

하버드 경영대의 ‘우주경제 보고서’ 인피니트 마켓 서평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밤새 TV 앞을 지키지 않는다. 발사가 실패하면 대형 뉴스가 되지만, 성공은 어느새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한국도 로켓 발사가 점점 ‘일상 기술’이 되어 가고 있다.

이번 발사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발사체 제작과 시스템 총괄을 한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는 민간 기업이라는 점이다. 과거 국가 주도의 ‘과학 프로젝트’였던 우주 개발이, 서서히 민간이 이끄는 ‘우주 비즈니스’로 넘어가는 징후다.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매슈 와인지얼과 브렌던 로소가 함께 쓴 인피니트 마켓은 바로 이 변화의 시점을 정면에서 다루는 책이다. 우주를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시장”이자 “경제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았다.


우주, 과학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다

책이 던지는 첫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주선을 쏘아 올린 것은 과학이지만, 지금 우주를 움직이는 힘은 경제다.”

냉전 시기 우주는 미국과 소련이 체제 경쟁을 펼치던 상징적 무대였다. 막대한 예산과 국민적 열망이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향했고, 인류는 달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우주 개발의 동력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한다.

“한 번 달에 갔는데, 또 가야 할 이유가 뭐냐”는 냉정한 질문이 미국 사회에서 힘을 얻으면서, 국가 주도의 우주 개발은 정체 구간으로 들어간다. 경쟁자가 사라진 독점 시장에서, 우주는 점점 정치적 상징이자 지역구 예산을 배분하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

인피니트 마켓은 이 정체를 깨뜨린 전환점으로 ‘민간 기업의 등장’을 지목한다. 정부가 직접 로켓을 만들던 주체에서, 발사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으로 역할을 바꾸면서 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같은 회사들이 채우면서, 우주에는 비로소 수요와 공급, 투자와 회수, 경쟁과 혁신의 논리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버드가 정리한 우주경제 3단계 프레임

두 저자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실제로 우주산업을 다루며 연구해 온 인물들답게, 우주를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로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의 중심에는 우주경제를 바라보는 세 단계 프레임이 놓여 있다.


  1. 1) 시장을 ‘구축’하는 단계
    발사 비용을 낮추고, 위성을 올릴 수 있는 인프라를 깔아 나가는 시기다. 재사용 로켓으로 비용을 떨어뜨린 스페이스X, 민간 발사 서비스에 도전하는 블루 오리진의 사례 등이 여기에 속한다.


  2. 2) 시장을 ‘정교화’하는 단계
    인프라 위에서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국면이다. 지구를 매일 촬영해 데이터를 파는 기업, 우주 쓰레기 제거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기업 등, 우주를 하나의 산업군으로 만드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난다.


  3. 3) 시장을 ‘조율’하는 단계
    규제, 소유권, 안보, 국제 정치가 본격적으로 얽히는 단계다. 소행성 광물 채굴권은 누가 갖는지, 위성 데이터의 군사적 활용은 어디까지 허용할지, 우주를 소수 국가·소수 기업의 놀이터로 남기지 않기 위한 룰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이 프레임 덕분에 독자는 우주를 단순히 “로켓 잘 쏘는 나라의 경쟁”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 생태계가 형성되고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차분히 바라보게 된다. 우주 이야기가 어느 순간, 우리가 잘 아는 경제 기사와 비슷한 언어로 읽히기 시작하는 지점이 인상적이다.



기업 사례로 읽는 ‘우주 비즈니스의 얼굴들’

이 책의 장점은 이론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우주경제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각각의 회사가 왜 기존 질서를 깨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는지, 경제학의 언어로 차근차근 풀어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재사용 로켓을 통해 발사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 스페이스X, 수백 기의 소형 위성으로 지구를 매일 촬영하며 데이터 비즈니스를 펼치는 플래닛(Planet Labs), 우주 쓰레기 제거를 본업으로 삼은 애스트로스케일(Astroscale) 등이 소개된다.

이 기업들은 로켓과 위성을 ‘기술의 상징’이 아니라, 명확한 고객과 수익 구조를 가진 ‘상품’으로 다루며 우주를 새로운 시장으로 전환해 왔다. 책은 이런 흐름을 통해 “우주는 꿈의 영역”이라는 막연한 이미지에서 “현실의 산업”이라는 인식을 독자의 마음에 천천히 안착시킨다.


한국 독자가 느끼는 아쉬움과 가능성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인피니트 마켓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 한국 우주산업의 위치를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는, 스페이스X가 팰컨9을 연간 수십 회 쏘아 올리며 발사 비용을 크게 낮추는 동안, 한국은 이제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참여한 누리호 4차 발사에 성공한 단계라는 점에서 격차가 실감 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앞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도체가 그랬듯,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우주산업의 어느 지점에서 한국 기업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우주 스타트업의 사례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우주가 아직 한국에서는 다소 먼 과학의 영역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덮고 나면 “언젠가 이 시장에 한국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독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질문

인피니트 마켓은 마지막까지 과장된 투자 조언이나 단기적 수익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이런 질문을 조용히 남긴다.

“우주 경제가 본격적으로 열릴 때, 우리는 그저 위성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드는 참여자가 될 것인가.”

우주를 단지 ‘먼 미래의 꿈’으로만 보던 독자에게 이 질문은 은근한 여운을 남긴다.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위성 데이터, 우주 기반 통신과 보안 등, 이미 우리의 삶과 기업 활동은 조금씩 우주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인피니트 마켓은 우주를 향한 거창한 영웅 서사 대신, 조용하지만 단단한 경제의 언어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누리호 이후의 시대, 우주를 과학에서 시장으로, 국가 프로젝트에서 모두의 비즈니스 무대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안내서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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