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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위 60년짜리 특혜 면허, 왜 아직도 못 건드리나?
  • 에릭 한 경제 전문기자
  • 등록 2025-12-02 00: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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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 직후 시작된 사업, 1970년대에 ‘사실상 영구 면허’로
  • 법·제도의 빈틈, 국유지 사용료는 매출의 1%도 안 돼
  • 5년짜리 계약서, 실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용권

한국삭도공업 제공

서울의 로맨스 뒤에 숨은 ‘공공재 독점’

서울 야경을 배경으로 천천히 남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드라마와 영화에서 수도 없이 등장한 이 장면 뒤에는 60년 넘게 단 한 민간기업이 남산을 사실상 ‘전용 통행료 징수소’처럼 써 온 구조가 숨어 있다.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삭도공업㈜’이다. 1962년 운행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운영권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3대에 걸친 가족회사 체제로 이어지면서, 남산이라는 대표적 공공 공간에서 나오는 수익을 특정 기업 일가가 독점해 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 매출 200억 원 안팎, 영업이익 수십억 원을 올리면서도 국유지 사용료는 매출 대비 1%도 안 되는 수준에 그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산의 봉이 김선달 아니냐”는 여론까지 더해졌다.


5·16 직후 시작된 사업, 1970년대에 ‘사실상 영구 면허’로

한국삭도공업의 남산 케이블카 독점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제분 사장이던 고(故) 한석진 씨가 1958년 회사를 세우고, 1961년 당시 교통부로부터 국내 최초 삭도(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받았다. 이듬해인 1962년 20인승 케이블카 2대로 운행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업권은 줄곧 이 회사 손에 머물러 있다.

핵심은 ‘기한 없는 면허’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다. 초창기에는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허가에 일정한 유효기간이 붙었지만, 1970년대 재허가 과정에서 면허기간을 명시한 조항이 빠지면서 남산 케이블카 사업은 사실상 ‘기한이 없는 사업 허가’로 굳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 뒤로는 궤도운송법상 케이블카 사업 허가 상한 기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 한 번 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키는 구조가 유지됐다.

그 사이 회사는 설립자의 아들로 이어지는 3대 가족경영 체제로 굳어졌고, 현재 지분은 창업주 후손과 공동대표 일가가 50 대 50으로 나눠 가진 가족회사 형태로 알려져 있다.


픽사베이

법·제도의 빈틈, 국유지 사용료는 매출의 1%도 안 돼

케이블카 선로와 승강장이 걸쳐 있는 땅 상당 부분은 ‘국유지’다. 그럼에도 한국삭도공업이 내는 국유지 사용료는 매출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삭도공업이 납부한 국유지 사용료는 연 3천만~4천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각종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에는 5천만~1억 원대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회사의 연 매출이 200억 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원칙적으로 국유재산법은 사용허가 기간을 5년 이내로 정하고, 일정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갱신을 허용한다. 남산 케이블카 부지 역시 이 틀 안에서 산림청과 5년 단위로 대부계약을 맺고 갱신을 반복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5년 계약이 한 번도 실질적인 재검증 없이 관행적으로 갱신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계약서는 5년짜리지만 실질은 무기한 사용”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여기에, 사업 초기에는 지금처럼 공공 인프라 민간사업에 대해 기부채납·공공기여를 폭넓게 요구하는 제도 자체가 충분히 정착돼 있지 않았다. 다른 케이블카·관광시설처럼 “일정 기간 운영 후 시설을 지자체에 무상 귀속한다”는 조건이 애초부터 붙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기업이 자신이 세운 시설을 계속 소유·운영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결과적으로 공공 자산 위에 세워진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사적 이윤으로, 사용료와 공공기여는 최소화된 채 유지돼 온 셈이다.


서울시는 ‘곤돌라’로 맞서고, 회사는 소송으로 막았다

독점 문제를 인식한 서울시는 다른 방식으로 판을 흔들려 했다. 기존 케이블카 옆에 새로운 궤도 교통수단인 ‘남산 곤돌라’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는 ‘지속가능한 남산’ 정책을 발표하며 예장공원과 남산 정상(N서울타워)을 잇는 곤돌라 사업을 추진했다. 장애인·노약자 등 교통약자 접근성을 높이고, 곤돌라 수익을 남산 생태계 보전에 재투자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한국삭도공업은 즉각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서울시가 곤돌라 부지를 위해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한 것이 위법하다며 공사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기존 사업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이 결정으로 곤돌라 공사는 공정률 10%대를 남긴 채 멈춰 섰고, 서울시는 항고했지만 2심에서도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여기에 환경단체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기존 케이블카 독점이 문제라고 해서, 또 다른 궤도시설을 새로 지어 남산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며 곤돌라 사업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한 곤돌라 사업은 기존 사업자의 소송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동시에 겹치면서 제동이 걸렸고, 그 사이 남산 케이블카의 민간 독점은 계속 이어지는 형국이 됐다.


한국삭도공업 제공

국회는 뒤늦게 ‘유효기간 20년 법안’…정치·로비 논란도

남산 케이블카 독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국회에서는 궤도운송법 개정안이 등장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케이블카 등 궤도사업 허가기간을 30년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최근에는 이를 더 줄여 20년으로 못 박는 강한 개정안까지 제출됐다.

올해에는 케이블카 등 궤도사업 허가 유효기간을 20년 이내로 정하고, 기간이 끝나면 재허가를 받도록 하는 개정안이 다시 발의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한국삭도공업 역시 처음으로 재허가 심사를 거쳐야 하고, 필요할 경우 다른 사업자로 바뀌거나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길도 열리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관련 법안 상당수는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간사업자의 로비와 정치적 계산이 뒤엉켜 법안 심사가 지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까지 나선 남산 케이블카, 독점 구조의 향방은

이제 남산 케이블카 독점 문제는 서울시와 국회를 넘어, 대통령실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전국적 이슈가 됐다.

대통령비서실은 최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산 케이블카 서비스 품질에 대한 시민 불만의 뿌리는 1960년대 특혜성 면허가 60년 넘게 유지된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며, 연간 수백억 매출에도 국유재산 사용료가 시세에 맞지 않는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는 남산 케이블카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한 궤도운송법 개정 움직임에 사실상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국삭도공업은 처음으로 “언제까지 남산을 쓸 수 있는지” 명확한 시한을 부여받게 되고, 재허가 여부를 둘러싼 공론장에 서게 된다.


남산은 누구의 산인가, 케이블카는 누구의 것인가

지금까지 남산 케이블카 독점이 유지돼 온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군사정권 시절에 내려진 특혜성 사업 허가가, 1970년대 재허가 과정에서 사실상 ‘기한 없는 면허’로 굳어지고, 그 이후 법·행정의 사각지대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60년 넘게 손대지 못한 채 방치된 결과."

남산은 서울 시민 모두의 산이고, 케이블카 역시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쓰는 공공 인프라다. 이제 남산 케이블카가 “특정 가족회사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공정한 경쟁과 적정한 공공기여가 이뤄지는 구조로 바뀔 것인지는 입법과 행정, 그리고 시민 여론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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