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문신사법’이 통과됐다. 1992년 대법원이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결한 지 33년 만에, 비의료인에게도 문신 시술이 허용되는 새로운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법은 공포 후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되며, 그 사이에 국가자격시험, 위생 및 안전 교육, 임시 등록제 등 세부 제도가 마련된다. 그동안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놓여 있던 수많은 문신사들은 드디어 제도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이번 법 제정의 의미는 단순히 규제를 풀었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수십 년 동안 음지에 머물던 업계가 공정한 제도 틀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사회적 낙인을 완화하고, 안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전환점이 된다는 평가다.
문신사법이 시행되면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하는 곳은 업계일 것이다. 그동안 간판도 달지 못한 채 단속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문신사들이 이제는 정식 면허를 취득해 당당히 활동할 수 있다. 위생 관리와 기록 의무, 표준화된 장비 사용이 요구되면서 소비자 신뢰도도 함께 올라갈 전망이다.
시장 확대도 불가피하다. 반영구 화장과 같은 미용 문신, 개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타투, 그리고 신체 표현 예술로서의 바디아트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도시에만 집중됐던 수요가 지방과 소도시로 확산되면, 지역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문신 잉크, 멸균 장비, 보건 검사 등 연관 산업 역시 동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성장의 이면에는 분명한 과제도 존재한다. 문신은 본질적으로 피부에 침투하는 시술이기에 감염, 알레르기, 잔류 독성 같은 위험을 내포한다. 법은 위생·안전 교육을 의무화하고, 염료 사용 기록 및 시술 이력 보관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관리·감독할지가 핵심이다.
보건당국이 충분한 인력을 투입해 감독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제도는 형식적 장치에 머물 수 있다. 또한 초기에는 저가 경쟁을 노린 불법 시술자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고, 소비자가 가격만 보고 위험한 선택을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제도권으로 편입된 만큼 더 강력한 단속과 소비자 신고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의료계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의사 단체들은 그동안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간주하며 비의료인 시술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특히 문신 제거, 피부 질환 치료, 레이저와의 융합 시술처럼 경계가 모호한 영역은 앞으로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은 문신 제거를 문신사에게 허용하지 않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문신사와 피부과 간 역할이 충돌할 수 있다. 시술 중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 소재, 보험 적용 여부, 소비자 보호 범위도 향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지점이다.
소비자 보호 장치 역시 중요한 과제다. 시술 전 유의사항과 염료 성분 공개, 부작용 가능성 설명은 물론, 사후 관리 지침까지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특히 미성년자 시술의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도록 규정했지만, 위조 동의서 문제나 책임 소재 분쟁 같은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
소비자가 불법 시술이나 부당 대우를 받았을 때 쉽게 신고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법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문신사법 통과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때 문신은 범죄, 비행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지만, K-Pop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문신을 드러내면서 세대별 시각 차이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제도권 편입은 이런 인식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다.
방송·광고에서의 규제 완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문신을 가리거나 편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합법화가 진행되면 콘텐츠 표현의 자유도 넓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타투 문화가 아시아와 세계 시장에 수출되는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법안은 공포 후 2년간의 유예 기간을 둔다. 이 시기에는 국가시험과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기존 문신사들이 임시 등록을 통해 적응할 수 있다. 시행 초기 1~2년은 업계가 제도권에 안착하는 시기로, 일부 불법 업소의 정리와 함께 소비자 신뢰 확보가 본격화될 것이다. 3~5년 뒤 안정기에 들어서면 시장은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연관 산업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행정 인프라 부족, 기존 업체의 적응 실패, 책임 소재 분쟁 등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업계, 의료계,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 구조와 지속적인 보완 입법이 필수적이다.
문신사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제도의 성패는 현장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생과 안전 기준을 지키지 못한다면 시장은 다시 음지로 회귀할 수 있고, 의료계와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하면 제도는 불완전한 틀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문신을 예술과 자기 표현의 영역으로 존중하되, 동시에 공중보건과 소비자 권익을 최우선에 두는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법은 오랜 그림자 속에 있던 업계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지만, 그 빛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섬세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