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검이 지난해 말 ‘건진법사’ 전성배 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현금다발의 띠지가 사라진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해당 현금은 약 1억6천5백만 원 규모였고, 그 중 5천만 원 상당은 은행 관봉권 띠지와 스티커가 부착된 상태였다. 관봉권은 자금 출처와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핵심 단서로, 자금세탁이나 뇌물 혐의를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증거물로 꼽힌다. 그러나 수사관이 이를 분실하거나 폐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증거 관리 부실을 넘어 고의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8월 19일이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남부지검의 증거 관리 부실과 보고 누락 정황을 보고받은 직후, 대검찰청 감찰부에 즉각 감찰 착수를 지시했다. 이후 대검 감찰부는 전담팀을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으며, 불과 이틀 뒤인 21일 수사관 2명을 입건하면서 감찰을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이는 단순 행정상 실수가 아닌 범죄 행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검은 이 사건을 단순히 ‘증거물 분실’로 보지 않았다. 8월 22일, 대검 조사팀은 띠지 관리 책임을 맡았던 수사관 2명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통상 검찰 내부 사안에 대해 자택까지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사관 개인이 띠지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는지, 혹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관봉권 띠지에는 화폐 다발의 포장 시점, 담당 은행, 출납 직원의 코드 등 세부 정보가 담겨 있다. 이는 돈의 최종 출처를 추적하는 ‘실마리’로 기능한다. 따라서 띠지의 분실은 단순한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 자체의 성패와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만약 증거가 의도적으로 폐기됐다면 특정인의 혐의를 가리거나 축소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불가피하다.
더 큰 문제는 띠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내부 보고 체계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찰 라인에 즉시 보고하지 않은 배경에는 ‘고의 은폐’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신응석 전 서울남부지검장이 보고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는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했는지가 현재 수사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대검 관계자들은 “윗선의 지시나 묵인이 있었는지를 철저히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증거 분실을 넘어 검찰의 수사 신뢰도 전반을 흔드는 사안으로 번지고 있다. 건진법사는 정치권과도 연루설이 꾸준히 제기돼온 인물인 만큼, 띠지 분실이 정치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한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관 개인의 실수’로 치부하기엔 압수수색과 수사 전환 속도가 너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는 곧 조직적 책임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대검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수사관들의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만약 단순 과실이 아닌 조직적 은폐 정황이 드러날 경우, 당시 수사 지휘 라인 전반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신응석 전 지검장이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건은 단순한 내부 관리 부실을 넘어 검찰 수뇌부를 겨냥한 수사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