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바나나가 열린다…기후변화의 신호탄?
“서울 하늘 아래 바나나가 열린다니 믿기지 않아요.” 서울 서대문구 천수 도시농장에서 바나나를 길러온 마명선 씨는 올해 처음으로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바나나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겨울이 춥고 일조량이 부족해 바나나 재배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간 여름이 길어지면서 도전해볼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20세기 초보다 약 1.6℃ 상승했고, 지난해 14.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 씨는 겨울에는 집 안에서 모종을 키운 뒤 봄에 텃밭으로 옮기는데, 올해 같은 극심한 폭염 덕분에 수확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 여름이 동남아시아와 비슷할 정도로 덥다”며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망고나 파파야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를 기후변화의 ‘북상 신호’로 해석한다. 제주도와 대구 일부 지역은 이미 바나나와 파파야를 상업적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올해는 경기·충청 지역에서도 열대 과수 농사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북대 기상학 교수는 “아열대 작물이 북위 35도 이상에서 성공적으로 자란 사례는 흔치 않다”며 “기후변화가 우리 식단과 농업 지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대과일 재배의 성공이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다. 아열대성 병해충 확산과 기존 온대작물의 생산성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기온 상승으로 귤‧감귤 등 일부 작물이 북상하는 한편, 사과‧배는 재배지가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시농업에서는 외래종이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도 있어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부로 느낀 시민들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천수 농장 주변을 찾은 관람객들은 바나나를 보기 위해 줄을 서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동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