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달러 아래로 밀린 비트코인, 30% 조정 국면 진입
한때 12만6천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던 비트코인이 12월 초 9만달러 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7만~8만달러대 폭락이었던 2021년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이다.
11월 중순 9만달러 지지선을 처음 내준 뒤, 가격은 8만5천∼9만달러 사이에서 불안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12월 7일 기준 주요 거래소 현물 가격은 8만9천달러 안팎으로, 10월 초 기록한 역대 고점(약 12만6천달러)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조정된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9만달러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이번 사이클에서 개인과 기관이 동시에 합류한 상징적 가격대”였다는 점에서 심리적 충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이 9만달러를 무너뜨렸나… ETF 자금 유출과 레버리지 청산
이번 조정은 단일 악재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다.
첫째,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11월 한 달 동안 주요 ETF에서 약 34억달러가 순유출되며, 그간 상승장을 이끌었던 ‘기관 매수 자금’이 일부 역방향으로 움직였다.
둘째, 레버리지 청산이다. 9만달러 아래로 미끄러지는 과정에서 하루 사이 10억달러 안팎의 선물·마진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는 집계도 나온다. 가격이 특정 지지선을 깨자 자동 손절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낙폭을 키웠다는 의미다.
셋째, 거시 환경이다. 일본은행의 긴축 전환 가능성,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한 실망감 등이 겹치며 전 세계 위험자산 전반에 조정 압력이 가해졌다. 비트코인은 더 이상 ‘주식과 무관한 별도 자산’이 아니라, 성장주와 비슷하게 금리·달러 강세에 민감한 리스크 자산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테더의 신용등급 강등,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한 상장사(Strategy·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매도 가능성, 대형 거래소 해킹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이어지며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주식은 오르고 비트코인은 내리고… 10년 만의 ‘디커플링’
이번 조정의 또 다른 특징은 주식시장과의 방향 차이다. 미국 S&P500 지수는 올해 16% 이상 오른 반면, 비트코인은 연초 대비 소폭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주식은 강세, 비트코인은 약세”라는 구도가 나타난 셈이다.
지난 사이클까지는 유동성이 풀릴 때 주식과 비트코인이 함께 오르고, 긴축기에는 함께 떨어지는 ‘동조화’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올해는 인플레이션 둔화와 미국 증시 랠리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에는 규제 불확실성·ETF 피로감·높아진 가격 부담 등이 겹치며 별도의 약세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와 닮은 30% 조정… “여기서부터가 진짜 변곡점”
가격만 놓고 보면, 이번 하락폭은 과거 사이클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트코인은 역사적으로 강한 상승 뒤 30∼40% 조정을 여러 번 경험해 왔다. 최근 8만1천달러까지 밀렸던 시점의 낙폭은 최고점 대비 약 36%로, 과거 강세장 중간 조정 범위와 유사하다.
다만 이번 조정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가격 레벨보다 ‘참여자 구성이 바뀐 상태’에서 나타난 하락이라는 점이다.
미국·유럽의 기관 자금이 현물 ETF를 통해 본격 유입된 첫 사이클이고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전략 비트코인 비축’ 정책 등 국가 차원의 보유 논의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이 정도 조정이 “일시적인 숨 고르기”일지, 아니면 “한동안 이어질 고점 통과 신호”일지에 따라 향후 암호화폐 시장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시나리오 세 가지… ‘투자 조언’이 아닌 리스크 체크리스트
전문가들은 향후 비트코인 흐름을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점검한다.
1) 8만~9만5천달러 박스권 ‘횡보 조정’
최근 며칠간 가격이 8만5천~9만5천달러 사이에서 빠르게 상하 변동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ETF 자금 유출이 진정되고, 추가 매크로 악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일정 기간 이 범위 안에서 거래량이 줄어드는 ‘소강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2) 8만달러 붕괴 및 7만달러대 재시험
기술적 분석상으로는 8만500달러 안팎이 다음 주요 지지선으로 거론된다. 이 가격대마저 이탈할 경우, 일부 리포트는 7만4천달러 수준까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레버리지 비율이 또 한 번 높아진 상태에서 매크로 쇼크(예: 예상 밖의 금리 인상, 대형 해킹·규제 뉴스)가 겹치면 급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 9만~10만달러 회복 후 재도전
반대로, ETF로의 자금 유입이 다시 살아나고, “이번 조정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9만달러선 회복과 함께 10만달러 재도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기관투자가 비중이커진 만큼, 단기간에 예전 같은 ‘세 자릿수 급등’보다는, 거시 환경과 규제 진척 상황을 보며 계단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어느 쪽이든 공통된 메시지는 하나다. 변동성은 과거와 다름없이 크며, 레버리지·단기 차입에 기대는 투자는 작은 방향성 오판만으로도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디지털 금”이라는 수식이 붙었지만, 가격 움직임만큼은 여전히 “초고위험 성장주”에 가깝다.
“9만달러 붕괴” 이후, 비트코인은 어디로 가고 있나
9만달러 선이 깨진 지금, 시장은 한 가지 질문을 공유하고 있다.
“이번 조정이 또 하나의 매수 기회인지, 아니면 지난 2년을 달려온 한 사이클의 정점이었는지.”
정답을 단정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더 이상 소수의 실험적 자산이 아니라, ETF·국가 보유·대형 상장사 재무제표까지 파고든 거대한 위험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9만달러 붕괴는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향후 몇 년간 비트코인이 “진짜 디지털 금”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극단적 변동성을 가진 투기 자산”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할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 여부를 떠나, 지금의 비트코인 흐름을 들여다볼 이유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