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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2715억원짜리 담합! 그동안 설탕 가격 왜 그렇게 올랐나 했더니… 2021년부터 2025년까지, 3조2715억원 거래에 얹힌 가격 담합 의혹 국제 설탕값은 30% 넘게 떨어졌지만, 국내 소매가격은 꿈쩍 안 한 이유 삼양·CJ·대한제당 임직원 11명 기소, 최낙현 전 대표는 구속 상태 재판행 에릭 한 경제 전문기자 2025-12-04 09:34:45


국제 설탕값은 이미 꺾였는데, 왜 마트 설탕은 그대로일까

“국제 설탕값은 떨어졌다는데, 왜 마트 설탕은 그대로죠?”
요즘 물가 기사 댓글에 빠지지 않는 질문입니다.

실제 숫자를 보면 말이 됩니다. 뉴욕 ICE 선물거래소 기준 원당(원료 설탕) 선물 가격은 2023년 10월 파운드당 27센트 선까지 치솟았다가, 2025년 들어 18센트 안팎, 최근엔 15센트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정점 대비 30% 이상 빠진 셈입니다.

반면 국내에서 1kg 백설탕 한 봉지 값은 체감상 내려간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검찰·정부 자료를 종합하면 2020년 1kg당 720원 수준이던 설탕 소비자 가격은 2023년 10월 기준 1200원까지 올라 4년 사이 59.7%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2%에 그쳤습니다.

국제 가격은 내려가는데 동네 마트 가격은 ‘버티기 모드’인 배경에는, 전쟁·가뭄 같은 글로벌 악재도 있었지만, 국내 제당 3사의 조직적인 가격 담합이 깊숙이 깔려 있었습니다.


3조2715억원 규모 설탕 카르텔… 구속된 대표, 드러난 가격 각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가 공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국내 3대 제당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설탕 가격의 인상 폭과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해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담합이 적용된 거래 규모는 3조271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교묘했습니다.

  • 세 회사 대표이사와 고위 임원들이 모여 “이번에 얼마쯤 올릴지” 큰 틀의 인상 폭과 방향을 서로 맞추고, 각사 영업 임원들이 구체적인 출고가와 인상 시기를 조율한 뒤, 영업팀장들이 대형 유통·식품 업체와의 협상 결과를 공유하면서 가격을 사실상 ‘공동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CJ제일제당·삼양사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가운데 각 사 대표급 임원 2명은 구속 상태로, 부사장·전무급 4명과 실무자 5명은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삼양사 쪽입니다. 설탕값 담합 혐의의 핵심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최낙현 당시 삼양사 대표이사는 11월 19일 구속된 데 이어, 11월 26일 다른 임직원들과 함께 기소되었습니다. 구속 직후인 11월 22일, 삼양사는 “대표이사 최낙현 사임”을 공시했고, 기존 강호성·최낙현 각자 대표 체제에서 강호성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담합 전인 2020년 1kg당 720원 수준이던 설탕 가격은 담합 기간 동안 최고 1200원까지 올라 66.7% 인상됐고, 2025년 4월 기준으로도 1120원에 머물러 담합 전보다 55.6%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당값 오를 땐 번개같이, 내릴 땐 슬금슬금”… 소비자만 손해

검찰·공정위가 특히 문제 삼는 대목은 원당(설탕 원료) 가격을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2021년 1월 기준 kg당 386원이던 원당 가격은 2023년 10월 801원까지 뛰었습니다. 이 사이에 제당 3사는 설탕 가격을 720원에서 1200원으로 신속하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원당 가격이 578원까지 떨어지는 동안에는 설탕 가격을 1200원에서 1120원으로 80원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검찰은 이것이 단순한 ‘가격 전가’가 아니라, 담합 구조 속에서 짠 각본대로 움직인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2020~2024년 기준 설탕 가격 상승률은 59.7%였지만,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는 14.2%,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22.9%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설탕값만 유난히 가팔랐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빵·과자·음료·라면·소스 등 설탕이 들어가는 가공식품 전반의 가격이 들썩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설탕값 몇백 원 오른 것’이 아니라, 장바구니 전체에 뒤늦게 전해진 후폭풍을 맞은 셈입니다.


30년 전에도 걸렸던 제당 카르텔… 이번엔 형사 책임까지

설탕 담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제당업계의 ‘짬짜미’는 30년 가까이 단골 의혹으로 따라다녔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1991~2005년 사이 설탕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2007년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에 총 5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3월, 공정위는 다시 이들 회사를 상대로 설탕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서울·인천·군산 등 본사와 공장에 조사관을 보내 판매 자료와 회의록을 확보했고, 그 결과는 서울중앙지검에까지 넘어가 형사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에는 과징금으로 끝났던 ‘제당 카르텔’이, 이번에는 대표이사 구속·기소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수위가 한 단계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검찰이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공개한 수사 결과에서도 “담합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막대한 만큼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문장이 강조돼 있습니다.



국제 설탕값 급등은 사실… 하지만 지금은 ‘내려온 뒤’다

그렇다고 설탕값 급등의 모든 책임을 담합 하나만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국제 설탕 시장이 크게 흔들린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3년 국제 설탕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26.7% 급등해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물류 비용이 치솟고, 브라질·인도 등 주요 생산국의 가뭄과 수출 제한, 바이오연료 전환 정책이 겹치면서 세계 설탕 공급이 크게 불안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한국 제당사들도 “원당 수입가와 운임, 환율이 동시에 올랐다”는 이유로 설탕 출고가 인상에 나섰습니다. 국제 시장 상황만 보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그 뒤입니다. 국제 설탕값이 2024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안정세로 돌아섰고, 2025년 들어서는 전쟁 직전 수준에 근접할 만큼 떨어졌는데도, 국내 설탕 소매가격은 이에 걸맞은 속도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내려와야 할 때 안 내려온 구간’을, 검찰과 공정위는 담합의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5년간 60% 뛴 설탕값, 앞으로 진짜로 내려갈까

2020년 이후 한국 가계가 체감한 먹거리 물가는 숫자로도 선명합니다. 국가통계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는 22.9% 올랐고, 전체 소비자물가는 14.2%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설탕 가격은 59.7% 올라 상승 폭이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이제 소비자의 관심은 두 가지에 쏠립니다.

첫째, 법적 책임이 어디까지 확장될지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대표이사급 2명을 포함해 11명을 기소했고, 공정위는 과징금과 시정명령 수준을 검토 중입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담합이 아니었다”는 제당사 측 항변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그리고 최종 판결이 어느 정도 수위로 나올지가 첫 번째 변수입니다.

둘째, 그 결과가 실제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입니다.
과거 여러 담합 사건에서 기업들이 거액의 과징금을 냈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조정은 미미하거나 일시적이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공정위·검찰·정부가 “담합 근절”을 여러 차례 강조한 만큼, 실질적인 가격 정상화까지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분명한 건, 이제 “그동안 설탕 가격 왜 그렇게 올랐나 했더니?”라는 질문에 국제 원자재와 전쟁 이야기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당사 회의실 안에서 오갔던 숫자와 약속들이, 우리 장바구니 속 설탕값과 과자값, 빵값에 어떻게 이어져 있었는지, 남은 건 법원과 규제 당국의 판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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