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 젊은 기상캐스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故 오요안나 씨는 MBC에서 프리랜서 형태로 활동하던 기상캐스터였다. 그는 방송에서 늘 밝고 친근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났지만, 사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동료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고, 끝내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방송계의 고질적인 프리랜서 관행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오요안나 씨의 죽음 이후, 유족은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유서와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메시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었던 것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오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적 차원의 직장 내 괴롭힘 규정 적용은 배제됐다. 바로 이 지점이 사건의 핵심이자 사회적 논란의 시작이었다.
방송사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계약직, 외주 인력들이 법적 근로자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면서,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비판과 성찰이 이어졌다.
2025년 9월 15일, 사망 1주기를 맞은 MBC 방송에서는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부 기상캐스터들이 검은색이나 어두운 계열 의상을 입고 뉴스에 등장했으며,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고인을 향한 조용한 추모가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공식적인 추모 멘트가 방송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복장을 통한 묵묵한 애도로 읽히는 장면이었다. 이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애도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MBC 유튜브 캡쳐
사건 1주기를 맞아 MBC는 제도적 변화를 약속했다. 기존의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는 폐지하고, 그 자리를 정규직 ‘기상기후 전문가’ 제도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일기예보를 진행하는 역할을 넘어, 기상·기후 관련 보도 취재와 해설, 콘텐츠 제작까지 담당하는 전문직으로 설계됐다. 지원 자격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기상·기후·환경 분야의 전공자, 관련 자격증 소지자, 또는 업계 경력 5년 이상인 사람 등이 대상이다. MBC는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공개채용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방송사 내부에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프리랜서 고용 방식을 정규직 제도로 전환하는 첫 시도로 평가된다. 불안정한 처우와 모호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유족은 이번 발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고인의 어머니는 현재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MBC 사장의 공식 사과, 고인에 대한 명예 회복 조치, 사내 추모 공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전체를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유족은 이번 제도가 마치 개선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한 현실’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제도 개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요안나 씨 사건은 프리랜서 노동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성이 부정되면서, 법의 보호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MBC의 발표는 제도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여전히 배제되지 않을지, 그리고 유족의 요구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다.
방송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일정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과 대응 체계도 강화되어야 한다.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유족의 바람처럼, 이 사건이 단순한 추모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고인을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