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8월 26일 밤,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12층 주상복합 오피스텔 옥상에서 40대 어머니와 10대 두 딸이 함께 떨어져 숨졌다. 범죄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고, 현장에서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CCTV와 휴대전화 포렌식으로 경위를 확인 중이며, 거주지에서 채무와 관련된 메모가 발견되었다는 점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이 메모의 의미는 아직 불분명하다. 생활고 여부에 대해서도 “단정하기 어렵다”는 초기 판단만 나와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은 가시화되지 않은 신호와 제도적 사각지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사건은 8월 26일 오후 9시 30분 무렵 발생했다. 어머니와 딸 한 명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딸은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았으나 결국 사망했다. 두 딸은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은 유족의 뜻에 따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되었으며,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과 유족·지인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자택에서 발견된 채무 관련 메모는 현재 수사팀이 주목하는 단서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과 시점, 작성자의 의도는 공개되지 않았다. 단순한 가계 메모일 수도 있고, 심리적 압박의 흔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를 곧장 ‘비극의 직접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수사팀은 금융기록, 채권·채무 관계, 주변인 진술을 통해 이 메모의 성격을 확인하고 있다.
강서구청과 경찰은 세 모녀가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었고, 복지 위기가구를 자동으로 탐지하는 행복e음 시스템에도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세보증금은 약 4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극심한 생활고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초기 판단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잠정적 결론에 불과하다. 생활비 지출 구조, 채무 성격, 최근의 현금 흐름이 확인돼야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겉으로는 버티는 가구’가 통계상으로는 지원 대상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빠르게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고가 난 옥상은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고, 난간은 성인 어깨 높이 정도였다. 특히 옥상 풀숲에 있던 나무 벤치가 난간 앞에 옮겨져 있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이런 구조적 조건은 충동적 선택을 막는 ‘마지막 마찰력’을 약하게 만든다. 고위험 장소에 대한 출입 통제와 구조물 안전기준이 중요한 이유다. 도시 안전은 개인의 심리 상태와 무관하게 사고 확률을 줄이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목격자에 따르면 두 딸이 먼저 떨어지고 어머니가 뒤따라 떨어졌다는 시간 순서가 포착됐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강요 여부나 의사결정의 주체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가족 내의 선택은 복합적이고, 순간의 결정에는 동조 심리나 죄책감 같은 요인이 얽힌다. 경찰은 휴대전화 기록, 메신저 대화, 검색 내역 등을 분석하며 맥락을 복원하려 하고 있다.
두 딸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점은 사회적 연결망의 밀도와 관련이 있다. 또래·교사와의 접점이 줄어들면 변화 신호가 외부에 포착되기 어렵다. 검정고시 준비 자체는 문제될 이유가 없지만, 일상의 구조와 정서적 지지가 부족할 때 위기는 더 깊어진다. 학업 경로 변화와 경제적 부담이 겹치면 고립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지원과 지역사회의 관찰망이 필요한 지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론이 아니라 맥락을 채우는 일이다. 계좌와 대출 내역, 카드 사용 내역 등 금융흐름, 친척·지인의 진술, 최근 일정, 의료·상담 기록을 교차해 분석해야 한다. 특히 자택에서 나온 메모가 단순 기록인지, 심리적 압박의 결과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부검은 생략됐지만, 디지털 흔적과 생활 기록만으로도 상당한 재구성이 가능하다.
첫째, 위기가구 탐지 기준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단순 소득·자산 기준뿐 아니라 현금 흐름 악화, 학업 공백, 심리적 위험 신호를 함께 고려하는 다중지표가 필요하다.
둘째, 학교 밖 청소년과 그 가족을 위한 맞춤형 연결망이 강화돼야 한다. 채무 상담, 학업 지원, 심리 상담을 한 번에 연결하는 원스톱 창구가 지역마다 마련돼야 한다.
셋째, 옥상·교량 같은 고위험 공간에 대한 물리적 안전장치 점검이 시급하다. 난간 높이, 출입 통제, CCTV 관리 등은 도시 안전의 기본이다.
강서구 세 모녀의 죽음은 아직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곧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과 이어진다. 생활고였는지, 채무 압박이 있었는지, 고립된 생활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보다 먼저,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비극을 단순한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고, 제도와 사회적 감각을 촘촘히 엮어내는 일이 다음을 막는 최소한의 길일 것이다.
※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 24시간 상담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