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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월급통장”의 몰락…직장인 꿈 앗아간 ‘유령건물’의 실체
  • 에릭 한 경제 전문기자
  • 등록 2025-08-14 10: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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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 74%·향동 90% 공실…지식산업센터 ‘참담한 현황’
  • 126곳 착공도 못 해 방치…‘월급통장’ 약속은 어디로 갔나
  • 잔금 납부율 13%…투자자 줄도산 위기


“은퇴 후 월급통장”의 몰락…지식산업센터, 절반이 ‘유령건물’ 전락


한때 ‘은퇴 후 월급통장’이라는 달콤한 수식어로 중장년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지식산업센터가 이제는 곳곳에서 불 꺼진 채 방치된 ‘유령건물’로 전락하고 있다. 공실률이 치솟고 거래가 급감하면서 투자자들은 잔금조차 치르지 못한 채 발을 빼고 있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 전국 1,066곳 중 40% 공실…착공 못한 곳도 126곳

국토교통부와 업계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준공된 지식산업센터는 총 1,066곳, 연면적으로 7,029만㎡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약 40%는 여전히 공실 상태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126곳이 인허가만 받고 착공조차 하지 못한 채 미뤄지고 있다.

이는 2020~2022년 저금리 시기, 안정적인 월세 수익을 노린 투자 열풍 속에 무분별하게 공급이 늘어난 결과다. 분양 당시 “임대 수익률 연 5% 이상”을 내세웠지만, 경기 침체와 기업 수요 위축이 맞물리면서 실제 입주율은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지역별 공실률 ‘충격’…포천·향동은 ‘텅 빈 건물’

경기도 포천의 한 지식산업센터는 전체 687실 중 74%가 비어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에 위치한 센터는 준공 1년이 지났음에도 입주율이 거의 ‘제로’ 수준이다. 해당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분양가를 맞추기 위해 품질을 낮추고, 수요 분석 없이 무작정 공급을 늘린 탓”이라며 “교통·입지 여건이 불리한 곳은 사실상 매각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 잔금 납부율 ‘참담’…13%대에 그친 곳도

분양 후 입주 과정에서 잔금을 치르는 비율도 급격히 낮아졌다. 양주의 5개 지식산업센터 평균 잔금 납부율은 26.7%, 인천은 37.4%, 시흥은 38.0%에 불과하다. 심지어 일부 센터는 잔금 납부율이 13.6%까지 떨어졌다. 이는 입주 예정 기업들이 경기 악화로 계획을 철회하거나, 금융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진 영향이 크다.


■ 거래량·거래금액 ‘반토막’

한국부동산원의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지식산업센터 거래 건수는 1,042건, 거래금액은 4,676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4.5%, 27.4% 감소했다. 호황기였던 2021년 4분기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든 수준이다. 특히 수도권 외곽 지역은 거래 자체가 멈춰 ‘거래절벽’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 왜 이렇게 됐나…‘저금리 착시’와 ‘공급 과잉’의 함정

전문가들은 지식산업센터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저금리 시대의 착시 효과와 공급 과잉을 꼽는다. 과거에는 대출이 쉽고 금리가 낮아 분양가 대비 임대 수익률이 높게 보였지만, 기준금리가 오르자 대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불어나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수백 곳이 동시다발적으로 건설되면서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공급이 발생했다.


■ 정책 개선 목소리…“입주 규제 완화·금융 지원 시급”

시장에서는 입주 업종 제한 완화와 담보인정비율(LTV) 상향 조정 등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지식산업센터는 제조업·지식기반 서비스업 등 일부 업종만 입주가 가능해 수요층이 제한적이다. 부동산 전문가 김 모 교수는 “규제를 완화해 스타트업, 문화콘텐츠 기업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금융권의 대출 문턱을 낮추는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투자자·지역경제 모두 ‘위기’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투자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센터 건립에 참여한 지역 건설사와 협력업체는 공사 중단으로 연쇄 부도를 우려해야 하고, 준공된 건물은 관리비 체납과 시설 노후화로 슬럼화될 위험이 있다. 입주를 기대했던 소규모 제조업체나 창업 기업도 계획이 무산돼 피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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